[교육의눈] 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1학기로 종료될 것만 같았던 원격수업이 2학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1학기에는 EBS 온라인 클래스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면 2학기에는 쌍방향, 실시간 원격수업이 대세이다. 학교 현장은 교육부에서 내려보낸 공문 한 장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쌍방향, 실시간 원격수업은 학습보다 보육에 치중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학습보다는 보육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교육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보육보다는 학습이 우선 되어야 하고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력을 길러주는 것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원격수업이 타율적 학습에 익숙한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수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 익히는 시간이 배우는 시간보다 적어서는 완전학습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자기주도학습은 학생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교사나 학부모의 도움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의 저서 나무수업은 자기주도학습의 지향점을 가르쳐주고 있다. 나무의 부모도 자기 자식들을 돌보며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무는 사회적 존재로서 공동체적 삶을 살아간다. 영양분이 부족하여 고사 상태에 있는 나무들은 서로 뒤엉킨 뿌리의 결합을 이웃 나무의 지원을 받아 생존을 유지한다. 이들은 여럿이 함께하면 비바람을 동반한 거센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이웃 나무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 이상의 가지를 뻗지 않아 삶의 필수적인 빛을 가리지 않는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나무 공동체에서 벗어나 있는 도심의 가로수가 약한 비바람에도 쉽게 쓰러진다는 것을 잘 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향인 숲을 떠나 도심으로 전입해 온 나무들은 친구도 없이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물리적 변화에 취약하여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페터 볼레벤에 의하면 도심의 가로수는 ‘거리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숲의 에티켓’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나무들로 자기주도학습력을 상실하고 타율적 공부에 의지하고 있는 학생들에 비유할 수 있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무 전용 수도관까지 마련하여 물을 주고 공을 들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진동식 다짐기로 다져진 도로나 인도 밑의 땅은 너무나 단단하여 쉽게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나무를 둘러싼 인간 중심의 환경과 매연 및 도심의 열기는 나무의 생명을 단축하게 한다.

숲의 생태계를 필요 이상으로 파괴하지 않아야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나무들이 숲속에서 완벽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좋은 환경에서 어린나무가 웃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빛과 영양분을 조절하는 역할은 어른 나무가 맡는다. 어른 나무인 교사나 학부모는 학생들이 시간 때우기식 원격수업이 되지 않도록 자기주도학습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들이 자기주도학습력이라는 튼실한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있도록 인지적, 정서적 빛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부드러운 토질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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