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분만실 앞에서 긴 시간을 서성대며 가슴 졸이고 기다리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터졌다. 얼마나 기다렸던 울음소리인가. 울음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새 생명을 만난다는 설렘에 가슴이 벅찼다. 탯줄 자른 아기는 딸이라는 말만 남기고 간호사가 3시간 후 신생아실에서 면회하라며 올라가버린다.

분만실에서 오랜 시간 산고를 견딘 며느리를 보자 눈물이 났다. 건강하게 자연 분만한 며느리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기다리던 면회 시간이 되어 올라가니 유리창 너머 간호사의 손에는 예쁜 공주님이 안겨있었다. 만져 볼 수는 없었지만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소중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신생아실에서 첫 상봉 후 손녀는 코로나로 인하여 2주일을 보지 못 했다. 퇴원해서야 겨우 안아보고 손·발도 만져 볼 수 있었다. 손싸개 안에 감춰진 손과 붉은 팥알이 붙어 있는 것 같은 발가락은 분명 신의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얼굴에 살이 오르고 하루 하루 달라지는 손녀가 어른거려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었다.

필자에게 아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여 난생 처음 철학관엘 갔다. 태어난 시가 좋다며 지어준 여러 이름 중 고은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하고 나니 손녀딸이 더 곱고 예뻐 보인다.

태어나서 한 달이 다 되어 갈 즈음 예방주사 맞으러 가는 길에 운전이 조심스러워 떨렸지만 설렘으로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주사 바늘이 들어가자 아프다고 우는데 마음이 아팠지만 우는 모습조차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는 손녀를 데리고 온다 하여 밖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아들의 차가 보였다. 포대기 속의 손녀가 집으로 들어오니 집안 공기가 다 따뜻해지는 것 같다. 처음으로 할머니 집에 온 손녀는 또 다른 얼굴 모습을 가지고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증손녀를 보러 가지 못 했던 어머님은 아기를 보자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신다. 왜 아니 그러시겠는가. 당신이 손수 키운 손자가 아기를 낳아 데리고 왔으니 얼마나 대견하겠는가.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기여서 더 소중하게 다가온 것일 게다.

아기를 품에 안고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며느리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지 싶다. 하품하고 딸꾹질 하고 방귀도 수시로 뀌는 손녀딸은 지금 열심히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일 게다. 아기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세상의 모든 시름과 슬픔이 없는 천국의 시간인 것 같다. 그저 바라면 봐도 마냥 행복하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단다. 그리고 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상은 울겠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이 속담처럼 잘 자라서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아가야, 네가 세상에 왔을 때 너는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 싫어 울었지만 할머니는 너의 울음소리에 너무 행복하여 울었단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