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일간지에 동양문고 김태웅 대표의 이야기가 실렸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여건 속에 고등학교를 다니다, 2학년 봄에 불량서클을 만들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퇴학당한 뒤 억울함에 혈서를 써서 제출했지만 학교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 후 출판업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늦은 나이에 퇴학당했던 고등학교에 복학해서 전교 1등으로 졸업하고 성균관 대학교에 입학해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꿈을 꾸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억울함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억울함은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그는 남들이 하지 않았을 엉뚱한 일, 즉 고등학교 복학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대로 새로운 삶을 펼친 것이다.

2010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가임 교수도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다. 그는 먼 외가 친척이 유태인이었고, 이름에서 유태인 느낌이 난다는 이유 등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두 번이나 낙방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른 대학에 입학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에서 계속 연구를 할 수 없어 네덜란드로 갔다. 그 후 그가 했던 다양한 연구 중에는 자기장 안에서 개구리를 공중 부양시키는 실험이 있다. 이 실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그는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에 있는 가는 털 때문에 도마뱀 무게의 수십 배까지도 벽면에 붙는 성질을 이용해서 게코 접착테이프도 만들었다. 이런 엉뚱한 발상으로 그는 2000년에 괴짜 과학자에게 주는 이그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0년 뒤 그는 진짜 노벨상을 타게 된 것이다.

같은 분야로 노벨상을 탄 노보셀로프 박사도 가임 교수와 같은 대학 출신이다. 그 역시 러시아의 일류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네덜란드에서 가임 교수를 만나 사제지간이 되었다. 그가 노벨상 수상을 한 결정적 실험은 흑연 표면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벌집 그물 구조의 2차원 탄소 물질인 그래핀을 만든 것이다. 이 물질은 전기가 잘 통하고, 벌집 모양 덕분에 충격에도 강하고 신축성이 있으며, 강도는 강철보다 100배나 더 강하다. 그래핀은 구부리거나 늘려도 전기가 통하는 성질이 있고, 열전도율도 구리보다 10배가 크고, 얇은 형태이기 때문에 빛이 유리만큼 잘 통과한다. 그래서 플라스틱에 1%의 그래핀만 넣어도 열에 녹지 않고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더구나 매우 얇고 투명하기 때문에 손목에 찰 수 있도록 휘어지는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고, 둘둘 말아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전자책이나, 자유롭게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전자태그,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스크린 등 거의 모든 형태의 전자기기들을 만들 수 있어 꿈의 신소재라 부른다.

이론적으로는 알려져 있었지만, 수많은 과학자들이 노력을 해도 만들 수 없었던 그래핀을노보셀로프 박사는 첨단기기가 아닌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의외로 엉뚱하면서도 손쉬운 방법으로 그래핀을 만들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지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스카치테이프에 그래핀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조사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래핀은 투명하기 때문에 있으리란 신념을 가지고 조사해도 한 시간 넘게 찾아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설마 그렇게 해서 되겠어?'라는 불신을 가진다면 절대로 찾을 수 없었던 물질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살면서 억울함을 당할 수 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병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화병은 1995년에 국제적으로 공인된, 한국인의 독특한 마음의 질병이다. 그러나 억울함을 딛고 자신의 방식을 소신 있게 밀고 나갈 때, 자신과 남에게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남의 인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 대한 만족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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