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코로나19가 대유행된 지 10여 개월이 지났지만 종식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누적 사망자는 100만 명이 넘었으며 확진자는 4,000만 명이나 된다니 지구촌의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와중의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가 발표되고 지난 19일부터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 대부분의 학교가 개학을 하였다.

갓 교단에 나온 신규교사는 원격수업 적응에 기뻐할 겨를도 없이 대면수업을 해야 하니 아쉬움이 클 수 있다. 반면에 원격수업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경력교사는 대면수업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원격수업을 위해 투자한 다양한 수업 기기들을 살펴보면서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수업 형태를 상상해 본다.

코로나19가 학교 수업 형태를 좌우하고 있는 현실은 교육이 정책에 얼마나 종속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학교 현장의 교사로서 일단락된 원격수업을 되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먼저, 교육 격차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원격수업의 교육 격차 문제는 대면수업의 교육 격차보다 더 심각하다. 원격수업을 수강하기 위한 기본적 컴퓨터 사양이나 부수적인 다양한 기기가 학습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정에서 부모가 학습 상황을 관찰하고 학생과 함께 할 수 있는가에 따라 학습 격차가 벌어진다. 또 대면수업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상황에서 가정의 경제적 수준은 학원 수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다음으로,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 부재를 들 수 있다. 원격수업의 소통 문제는 학력 격차와 바로 직결되는 것이기에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원격수업을 주도하는 플랫폼은 소통이 어렵고 불편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격수업을 받는 학생이 학습 플랫폼의 음성을 소거한다든지 화면을 끈다든지 교사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으면 소통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 학습 공백으로 이어져 학급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끝으로, 교육이 방역에 밀려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 원격수업 기간에 학교에서 가정으로 발송된 문자는 대부분 방역 및 개인위생에 관련된 것으로 학습과는 무관한 내용이 많다. 이러한 상황은 학생 대다수가 등교한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수업 시간을 단축한 여유 시간과 여력을 방역에 집중한다. 등교한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단 10분이라도 본다면 학교 방역이 얼마나 요식적 행위에 불과한지를 알 수 있다.

코로나19가 종말을 고하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는 우리 삶의 일부로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스웨덴식 코로나19 방역이 세계적 주목이 되는 이유는 정상적 경제 활동을 바탕으로 복지 제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최소한의 통제와 자율적 실천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현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게 교육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교육이 독립적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일이요, 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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