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가을이라 그런지 가느다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그저 쓸쓸해진다. 때 되면 가을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나무와 진노랑으로 단장한 은행나무와 각각의 총 천연색으로 치장되어지는 나뭇잎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가을이 올려다 본 하늘에는 파란 하늘 그리고 어쩌다 이리저리 폼을 잡고 있는 하얀 구름이 떠도는 날들이 많아진다. 슬쩍 바람막이로 올린 옷깃 속에 묻은 눈길은 뒹구는 낙엽을 따라 길 위로 내달린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낙엽들을 보며 괜스레 공허함 가운데 우리는 각자 홀로 선다.

어쩌면 나뭇잎이 우리의 삶을 한 해의 짧은 시간에 농축하여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봄직한 시절이다. 나무가 살아남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용물로서의 잎새는 그 소임을 다하고 나무에서 낙엽으로 떨어져 나간다. 어떤 잎은 새빨갛게 화가나 있고, 어떤 잎은 노랗게 질리고, 어떤 잎은 나무에 매달린 채 시커멓게 시들어간다.

요새는 어떤 조직이고 베이비붐세대가 정년을 마치고 조직을 떠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조직에서는 정년이 되면 떠나야 한다. 아니 떠나라 한다. 정년에 가까워진 사람들은 대개 두 부류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부류는 긴 조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떠나가고자 한다. 이런 경우는 조직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른 생활의 틀을 계획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새로운 삶을 준비해 놓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가 금전적으로 풍족하여 부동산이나 동산의 자산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기반으로 삶을 영유하고자 하는 경우이다.

물론 특이한 경우로서, 조직에서 떠나는 이들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으려 경우도 있다. 아직 조직에서 그를 필요로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부류는 조직은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라고 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는 사람으로서 조직을 벗어나는 것이 죽음보다도 싫은 경우이다.

대개가 이런 경우이다. 조직의 생활에 익숙하여 길들여진 삶의 틀을 바꾸기에는 비비댈 언덕이 없는 경우로서,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경우일 때가 많다. 경제적으로 자유롭다 하더라도 대개가 한정된 조직에서의 탈피를 두려워하는 경우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이 의도한 잘못도 아닌데 의도하지 않게 사회의 부담으로 남게 되는 경우이다.

어느 조직이든 정년의 시기를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수들을 고려하여 태어난 해부터의 햇수로 정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사회의 변화에 적응적으로 대처하는 조직들도 있겠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함이 존재한다.

베이비붐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져서 기존의 기준으로 보면 노령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노인이 대부분인 사회는 활력이 감소되는 늙은 사회임은 틀림이 없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점차적으로 더 심각한 노령사회로 치달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노령인구의 문제는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구성원 각자의 부담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참으로 시각을 다투는 심각한 사회적인 과제인 것 이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년에 관계없이 조직에서 일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개 개개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객관성 있게 평가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리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의 일자리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 것이 불행한 현실이다. 조직의 의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조직은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구성원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자동차의 고장 난 타이어는 바꿔 끼워야 하듯, 조직에서 역할이 충족되지 못하는 구성원은 조직에서 떠나도록 강요받고 또 그리되어야 한다고 한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처럼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조직으로부터 귀중한 존재로서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빛바랜 낙엽처럼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온다.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데“를 외치며 악다구니를 해본들 소용이 없다.

젊은 시절의 업적을 공치사 한들 다 쓸 데 없는 헛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 조직이다. 오죽하였으면 어느 시인은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지 아니 한가”라고 읊었을까!

이 가을은 떠나는 연습을 하는 계절인가 보다. 가을 하늘은 떠나는 이를 위하여 시퍼렇게 멍들고 나뭇잎들은 떠나는 이를 위하여 대신하여 울긋불긋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들은 모두가 다른 색깔로 치장하고 결국에는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우리의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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