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학교 정문 앞 큰 돌에 새겨진 ‘정직 근면 성실’ / 보고 또 보아 귓밥 돼 솔았는데... / 어른들 거짓말 숨기장난 같다. / ‘꿀꺽 꿀꺼덕’ 삼키면 그만 / 필자의 동시 ‘어른이 설마’ 첫 연이다. “할아버지 빨리 오세요. 심심해요” 코로나(방콕)에 지친 초등1학년 손주 전화였다. 규정 속도를 원망하다시피 가속페달을 밟아 헐레벌떡 들어서자마자 팽이 시합을 하잔다. 재질과 생김새부터 규칙까지 필자가 어릴 적 즐기던 것과 전혀 달랐다. 몇 차례 시연 뒤 본게임에 들었다. 여섯 판 째 4:2, 내리닫이 두 점 앞선 손주는 “할아버지 엉터리”라며 일방적으로 판을 접었다. 기분 돋우려고 조작한 게 들통 나 되레 상처만 준 세상 할아버지의 은폐된 재래식 무기, 설마 그럴 줄 몰랐는데 말이다.
요즘, ‘정치 얘기’아니면 대화거리가 없을 만큼 관심사다. ‘법치훼손, 대선전망’ 등 꽤 솔깃하다. 정의실현을 위한 국가안전 장치인 법조차 무력화하는 꾸라지들의 뻔뻔함까지 용케 집어낸다. 비리에 얽히고설켜 차마 거명조차 민망한 정치인과 관료들은 변명만 늘인다. ‘왜곡·억울’ 운운하며 사슬을 풀어 누굴 묶으려하는가. 연실 불거진 변칙·특혜 앞가림에 몰두하느라 국정 부실까지 우려됐다. 그렇다고 근무연장 아니면 휴일 특근할리 만무하니 전후좌우 사정을 따져보면 더욱 헷갈린다. 스스로 신뢰를 뭉갠 ‘내가 제일 잘나가’의 팽배다. 관할부처 답변조차 ‘그 때 그 때’ 다른 ‘갈팡질팡’ 대정부질문·국정감사, 툭하면 ‘박장대소’ 아닌가. 정책 실종 편 가르기 수준의 정쟁을 방증한다. 인간사에 미필적 고의든 실수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정하고 고치려는 자세보다 눈 부라리며 ‘어쩔 건데?’ 육탄전을 편다. 오히려 앞장서 할퀴고 물어뜯으니 국민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질 지경이다. 출처와 근거조차 모호한 루머를 부풀린 채 국회로 들여와 특종을 노리다 ‘아님 말고’식 헛발질도 당혹스럽다. 일찌감치 본연의 법안 심의는 ‘건성건성’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반대를 위한 반박, 치졸수준 정치 맞다. 결국 코로나보다 한수 위 ‘설마 바이러스’가 틀림없다. 정치 고질병인 네 다섯 겹 속내의 실체적 진실이 궁금하다.
국민 절박감을 정치권만 모른다. 여전히 내 편 네 편 ‘후려치고 돌려막기’ 외엔 꿈쩍도 않는다. 어쩌다 이렇듯 제각각일까. 설령 그럴망정 위대한 역사 인물에 함부로 검은 기름 붓지 마라. 명예와 긍지를 송두리째 모욕·훼손하는 엄청난 결례다. 여덟 살짜리 외손의 “할아버지 엉터리” 속셈 뻔한 충격, 생각할수록 화끈거린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상대 티끌만 보려는 게 문제다. 상생의 길은 존중이다. ‘협치’를 대신할 정치천재란 없다. 민주적 ‘정치 품격’을 바라는 건 또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