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겨우내 잠자던 대지는 단비를 담뿍 받아들여 새 생명을 키울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런 자연스러운 순리를 맞이해야 하는 기쁨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구제역 매몰지에 빗물이 스며들면서 침출수가 넘쳐 온갖 우려를 낳고 있다.

구제역은 발굽이 2개로 갈라진 우제류에 전염되는 병으로 인간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동물 전염병이다. 하지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파묻히면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식수로 쓰는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지표면을 더럽히니 이 여파가 얼마나 클지 불안하기만 하다. 질병은 고금을 통해 보면 상하수도 시설이 부실한 곳에서 창궐했었다. 용변도 마구잡이로 버려져서 하천과 합류되어 식수와 섞여 온갖 질병에 시달렸고,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가 유럽 인구 4분의 1을 사망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었다.

가축은 야생동물을 잡아다가 온순하게 길들여 우리 생활에 유용하게 쓰는 동물이다. 특히 소와 돼지는 인간에게 영양분을 주는 젖먹이동물로서 식품 역할을 하고 있다. 채식주의 운동의 발단 동기는 가축이란 이름으로 인간에 의해 희생당하는 농장 동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생겼다고 한다. 그들도 삶에 대한 권리가 있는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동물이 건강하게 자라서 그 역할을 다했다면 아무 탈 없이 제 생명을 다하고 생을 마쳤을 것인데 억울한 최후를 맞고 보니 그 한이 침출수가 되어 골치 아픈 문젯거리로 환생을 하는가.

2002년 이후 8년 만에 경북 안동지역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경기, 강원, 인천, 충북지역까지 확산하면서 세계동물보건기구의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잃었고 그 피해규모는 사상 최대가 되었다. 그동안 전국으로 퍼진 이 질병으로 수많은 소와 돼지가 목숨을 잃었고, 사후 처리로 선택한 매몰의 후유증으로 침출수라는 복병이 지금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구제역이 확산 될 때부터 2차 오염 우려가 있었으나 정부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관련규정과 기준을 무시한 채 부실 매몰을 자행해 오늘과 같은 인재를 불러일으켰다. 뒤늦게나마 김황식 국무총리 주제로 열린 당. 정. 청 고위인사 9명의 모임에서 구제역 발생지역의 침출수 및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월부터 매몰지 소재 지역 1천여 곳에 상수도를 설치한다고 한다. 또한,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현지를 방문해서 배수 방법에 문제가 있고 비가 오면 빗물의 스며들 우려가 있으니 설치 지침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각 지자체는 하천이 가까운 매몰지는 이설을 하거나 관리에 총력전을 펼친다고 하니 비록 아쉬운 대로 희망적인 기대를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죽은 뒤에 약방문(藥方文)을 쓴다는 뜻이 사후약방문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미 때가 지난 후에 대책을 세우거나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조선 인조 때 홍만종이라는 학자의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말로서, 굿이 끝난 뒤에 장구를 쳐봐야 소용없고, 말을 잃어버린 후에는 마구간을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고로, 어떤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대책을 세울 줄 알아야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교훈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은 후, 명약이 무슨 소용인가. 이번 침출수 사건을 보면서 살아 있을 때, 적절한 약을 쓰고 천수를 누리다가 여한 없이 떠나는 생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새삼 가져본다.



/한옥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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