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
차곡차곡 쌓아둔 이야기보따리 / 입 열면 돋아 날 꿈이 한 움큼 / 언제 쯤 맘 놓고 천둥처럼 소리 낼까 / 코로나야 넌 방학도 없니? / 필자의 동시 ‘그만 가라’ 전문이다. 인간교육의 최상위 목표로 ‘미래를 움직일 힘’을 꼽는다. 두 자리 수 세 자리를 오르락내리락 끊일 줄 모른 코로나 확진 공포에 봄 여름 가을 세 계절 꼬박 끔찍한 무늬로 너절하다. 제 아무리 난다 긴다 하던 선진국도 망신창이가 되다시피 혼란스럽다. 호전 기미도 없다. 언제 쯤 자유롭게 넘나들며 얼싸안고 씨알 굵은 인사를 나눌까.
초·중등 개정 교육과정 특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 함께할 민주 시민’을 꼽는다. 그러나 정보화·세계화·개방화에 따른 교육개혁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아이들 체감 행복지수는 몇 년 째 최하위다. 주입식은 학습 밖 용어로 밀린지 꽤 오래됐으나 떠먹이기식 케케묵은 독점적 방법, 고정목표만을 향한 질주를 어쩌랴. 학습조력 아닌 지식 전달자의 횡포일까. 자신이 깨닫는 공부와 딴판으로 여전히 ‘오지 선다’ 족쇄 아닌가. 아집으로 침묵한 충청북도 형 ‘명문고 육성’을 두고 침묵이 계속되는 걸 보면 정치 아노미를 배제하기 어렵다.
코로나 포스트 발 비대면 '온라인 수업', 교과내용 단절은 물론 교육 부실화 우려와 달리 선생님·학생 간 상호작용 접속까지 IT 강국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혼공·혼놀·혼밥에 대한 보편 형태의 일상화로 숨통을 막아 역동적 문화 창조와 윤기 있는 생활을 꾸릴 에너지도 바닥났다. 한편 ‘아, 옛날이여’는 오래 동안 씻기지 않을 터 익숙한 교단 매뉴얼이 마냥 묵살될 시그널을 정확히 읽어야겠다.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건 원격교육 특성상 신개념 교육콘텐츠 탄생은 ‘교실 없는 학교’를 가속화시킬 흐름이다. 염화나트륨·연탄재·넉가래로 미끄럼 길 안전을 도모할 순 있어도 햇살 몇 줌 앞에선 무력하듯 기본 플랫폼부터 혹독한 ‘환골탈태’급 마중물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더 보태 아이들 실수일수록 한 발 물러서 외면하라. 난감함을 허락해야 우연도 교육플랜 B도 먹힌다. 순서를 지키지 않아 후회한 사례 대부분이 생뚱맞은 과욕 때문이었다.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린 코로나 1세대 교육 청사진, 생각보다 버겁다. 엄마의 세계·교사 권위·교육제도 등 도전과제가 넘쳐 어떻게 대응할지 조바심 난다. 어쨌거나 장기간 온라인 학습 분위기는 선생님과 친구 모두 서먹서먹할 뿐, 사실 가끔 등교해 봤자 종일 옴짝달싹 못하니 학교 맛 잃기 충분조건이다. 이러다 공교육 문패마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긴 그렇다. 정말 한 발짝 늦으면 필시 험악한 충격과 동거할 수 있다. 결코 신의 한 수란 없다. 우물이 마르면 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법, 아무리 위기의 교단이라도 무릎 꿇지 말자. ‘뉴 노멀’ 표적을 향해 미래를 달구면 된다. 늦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