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지난 주말에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을 국화와 단풍으로 잘 알려진 관광지를 다녀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예약에 성공했으나 자동차는 목적지 4km 전부터 밀려 거북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1시간 남짓 지난 다음에야 입장할 수 있었던 그곳에는 마지막 단풍을 즐기려는 행락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단풍은 사전적으로 계절에 따른 날씨의 변화로 녹색이었던 식물의 잎이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변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지난 계절 늘 신록의 모습을 보였던 나뭇잎이 계절의 변화에 어울리게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상의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단풍잎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신세이기에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단풍은 타감작용(他感作用)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타감작용은 식물에서 화학물질이 생성되어 다른 식물의 생존이나 성장을 방해하거나 촉진하는 현상이다. 땅에 떨어진 단풍잎은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라는 물질을 분비하여 단풍나무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한다. 

소나무의 타감작용은 뿌리에서 갈로탄닌(gallotannin)이라는 화학성분이 분비되어 나뭇가지 아래에 다른 식물뿐만 아니라 어린 묘목까지 살 수 없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무들은 이러한 삶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확보하고 성장을 촉진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나무를 큰 나무의 그늘아래에 두고 키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외래종 식물인 양미역취는 타감작용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식물을 몰아내고 집단 군락을 이루고 살아간다. 그러나 집단 군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력이 약화되어 시들해지고 만다. 주변 식물이 몰살된 상황에서 더 이상 공격할 대상을 찾지 못하자 동족을 해치고 멸종에 이르는 것이다.

한때,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명명되는 수저론이 회자하여 우리를 슬프게 한 적이 있다. 청년 실업의 증가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현실에 상대적 박탈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매스컴을 통하여 엄마 찬스, 아빠 찬스라는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찬스를 사용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부모들의 신세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금수저나 은수저뿐만 아니라 엄마 찬스, 아빠 찬스를 뛰어넘는 혜안을 지니고 있다. 생래적으로 타고난 재물이나 부당한 개입이 자식의 마지막 삶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우리는 그것들이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 나쁜 영향으로 작용하여 최종적으로 파멸에 이르는 경우를 목격한 적이 적지 않다.

나무들은 자식들을 자신의 그늘에 키워 파멸에 이르게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멀리 떼어 놓으려 한다. 자신의 그늘에서는 자식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보호는 오히려 자식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삶의 진리를 나무를 통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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