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모임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한 선배님이 나를 붙든다.

"우리 동네에 미장원이 있는데 원장이 여러번 선생님을찾는 것 같아" 하며 제자 이름도 알려주시는 것이다.

"예 고맙습니다. 제가 한번 찾아가 볼게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아도 어느 학교에서 언제 가르친 제자인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c고교 앞에 위치한다 하여 지나다 들러보니 상호는 맞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마침 설명절이 지나고 누군가 보고 싶기도 하여 재차 찾아가보니 문이 열려 있었고, 꽤 아름다운 여인이 상냥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저 원장이 나를 찾고 있는 제자인가?'

내심 당황하며 머뭇하는데 "선생님..."하면서 나의 손을 잡는다. 그래도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친구들 이름을 조심스레 물어보니 유@@,이@@,김@@,신@@등 모두 기억나는 이름들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0여년 전 청원군의 조그만 시골학교에서 가르친 제자인 것이다. 3학년 때 담임했으니 제자는 33살, 실로 23년만의 만남이다.

"네가 부족한 선생님을 잊지않고 찾아주니 고맙다. 헤어 디자인 기술이 좋은지 네 칭찬이 아주 많으시더라. 선생님은 오래 전 일이라 그 때 기억이 크게 없는데 네가 특히 기억나는 게 있니?"

제자는 기다렸다는듯이줄줄 그 시절 이야기를 열어 놓는다.

제일 먼저 선생님은 아주 엄하고 잘못하면 벌을 많이 주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학교 주변 들과 야산으로 돌아다니며 산야에 풀꽃들을 사랑한 이야기. 셋째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가르쳐서 전교에서 1등을 하고 성적이 떨어지면 아주 혼이 났다는 ...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특히 귀여워해 주셔서 우리들이 뒤에서 샘도 냈는데 그래도 선생님이 아이들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었다는 얘기를 덧붙이니 다행이었다.

"선생님! 이제 머리가 하얗게 되셨네요. 그 때는 머리가 길고 숱도 많아서 우리들이 머리도 따아드리고 선생님한테서 고운 향기도 많이 났었어요."

나는 기억도 없는 것을 10살된 어린 소녀가 그토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음에 나는 내심 기쁘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데 마침 단골 손님인지 일가족 세 명이 들어선다.

"서비스 업이니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방해 될까봐 그만 가보아야겠다."

저녁을 함께 하자는 만류를 뿌리치고 집에 와 옛 기억을 더듬어 제자들의 편지와 작품들을 뒤적이다 보니 다행히 그 시절 아이들의 흔적이 보관돼 있었다. b 소녀가 답안지 사건에 쓴 반성문도 있고, 200자 원고지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동시작품도 몇 편이 있었다.

k소년이 지은 '바람'이라는 동시를 읽어보니 버드나무 벤치 아래서 시를 짓고 그들과 한 몸되어 놀던 일이 그림처럼 되살아난다.

이제 새 학기가 또 시작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 호기심과 나름의 소망을 안고 있을 것이다.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이 이렇게 아이들의 뇌리에 살아있다면 교사는 말과 행동을 조심할 뿐 아니라 영원한 멘토로서 존재해야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말한마디와 바른 가치 판단이 자녀들이 험한 일생을 살아갈 때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제자들, 자녀들의 추억을 곱고 깊게 안겨주고 꿈을 키워주는 것이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늙기 전에 해야할 일 중의 하나이다.

지혜의 왕인 솔로몬의 잠언에 보면

『매를 아끼는 이는 자식을 미워하는 자 자식을 사랑하는 이는 벌로 다스린다』고 일침을 주고 있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그저 귀하다 하여 어른아이 구분 못하고 설자리 앉을 자리 모르는 너무 방종한 아이들로 키워내선 안될 일이다.

제자의 추억이여, 시간의 가시밭길을 우리는 잘 건너갈 것이다. 제자들의 추억을 나도 사랑한다.



/박종순(회인초 교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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