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사이 서른 날 /그래도 나는 빨간 날이 신난다. /달력 글자 빨가면 /마음은 녹색
/산, 들판, 냇물 모두 교실되는 날/필자의 동시 '빨간색 글씨'의 전문이다.
눈 코 뜰 새 없는 학교의 요즘, 학생과 교직원 모두 총총 걸음 보폭에 학부모까지 뛴다. 농사로 따지면 못자리와 맞먹을 때다. 풍작을 향한 출발 신호가 울렸다. 농심의 기대처럼....
별다른 수입 없이 한우 두 마리와 논 몇 마지기 경작하여 팔남매를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은 참으로 용한 분이셨다. 생각할수록 계산은 커녕 본전조차 어려운 농사로 어떻게 꼬박 먹이고 입히며 학비 한번 밀리지 않은 채 교육을 시키셨을까? 그러기에 어머닌 마흔이 넘자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하셨나 보다. 최근엔 일년 내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보았자 본인의 인건비 떠먹기도 어렵다니 농촌과 도시의 교육 격차까지 조심스럽다. 젊은이 몇이서 어르신과 고향을 지키는 한적한 시골 분교장에도"하나 둘, 셋넷"선생님 구령에 맞춘 신입생 후렴이 담장을 넘는다.
인 연 상급학년 언니들이 동생들 손을 잡고 학교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 준다. 빗자루 잡는 법을 알려주지만 아직은 청소도 모른다. '심은 대로 자라고 뿌린대로 거둔다'는 보편적 진리를 얻는 날들이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과의 궁합도 있다. 내가 초등학교3학년 되던 해, 담임선생님은 고등학생 처럼 짧은 머리에 4km가 넘는 길을 꼬박 걸어서 출퇴근하시며 아무리 기온이 내려가도 호주머니에 손 한번 넣지 않으신 채 꼿꼿한 모습을 지키셨다. 언제나 부모님처럼 나즈막한 말씀으로 '공부란 쉽고 재미있는 것'임을 심어주시며 반 아이들 모두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에 푹 빠지게 하셨다. 우리의 우상이신 선생님의 퇴근길엔 한결같이 반 친구들이 모두 따라나서 절반정도 거리를 배웅하며 아쉬움에 허우적거렸다. 비록, 짧은 1년이었지만인생의 진로가 넌지시 터득되는 만남이었음이 분명했다. ' 꼭 담임선생님 닮은 교사'가 되려는 꿈을 지피기 시작한 계기였으니 그 보다 더한 감동적 인연를 어디서 찾으랴.
-칭찬
'사람으로서의 선생'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불러주고 가끔은 함께 유리창도 닦으며 아주 보잘 것 없는 약속일수록 꼭 지키는굴렁쇠 같은 선생님이기를 아이들마다 꼽고 있다. 물위에 떠 있는 찌의 움직임으로 물밑을 읽어내는 낚시꾼처럼, 표정 하나로 어린이가 뭘 원하는지 작은 일렁임까지를 알아내는 선생님 말이다. '칭찬 앞에선 고래도 춤을 춘다'고 한다. 하물며 인간에 있어서의 상찬이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다.상과 벌에 대한 논란은 교육계 뿐만 아니다.상을 받는 경우는 더 발전적이고 말할 나위없이, 같은 값이면 꾸짖는 것보다 몇 배의 능률과 효과를 낳게 된다. 가끔 교육적 과정 운영 중, 정도의 차이로 묻어나는 체벌 때문에 파장이 불어나는 안타까움을 보게 된다. 바람직한 행위 뒤에는 스스로 흐뭇해 하며 행동 방향도 새로워지고 더 잘하려는 마음이 자리 잡는다. 이것은 나이를 불문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고 중용을 잃으면 곧 지탄의 대상이 되고 소리없는 불화살을 맞게 된다. 벌 또한 가끔, 필요악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 못한다. '사랑의 대화'라는 신효한 약으로 눈을 돌리면 체벌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지금은 아주 여린 꿈과 소망으로 도란거리지만 이 아이들이 움쭉 큰 날, 나도 어쩜 개나리 향기 그윽한 tv녹화장에서 제자와 나란히 화면의 주인공으로 웃게 될 거라는 벅찬 기대와 함께새학년 다부진 일기장을 편다.
/오병익 청주경산초교장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