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까만 밤이다. 새벽은 언제 올지 아직도 감감하다. 그러나 새벽은 분명히 오고 있다. 위기의 밤이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죽음의 공포와 삶의 절실함 사이에서 숨을 가쁘게 쉰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은 날카롭다. 이러한 처지를 운명이라 탓해봐야 소용이 없다. 상황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야 한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인간이 긴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형태이다. 백병전처럼 적군을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모두가 같이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동침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우리는 현재의 고통에서 구해 줄 존재인 우리의 위대한 영웅이나 신을 기대한다. 그 존재는 분명히 어두운 터널에 태양이 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이어야 한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고통과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그런 해결사! 그래서 그 존재가 사람들은 동굴에 갇혀있는지 탈출한 것인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그저 현재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존재는 없다!

우리 인간은 늘 그렇게 초월적인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외롭게 난관을 극복해내었다. 이번의 코로나 사태도 인간은 분명히 극복해 나갈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요사이는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인 제재에 대하여 말이 많다. 공평한 처사가 아니라고도 한다. 힘든 선택임에는 분명하다. 어찌되었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견뎌내고 있다. 불편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촌 전체가 겪고 있는 바이러스 빙하기의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서도 기회를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을 이용하여 자신만을 위한 자본주의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전쟁하지 않는 옆 나라는 전쟁 물자를 팔아 부자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으로 변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행복은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져야 하는 존재이다! 행복은 절대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불행 또한 공유되어야 하는 나눔의 존재임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환난의 시기는 정치가들에게는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상대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지구촌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국가들의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너무도 자명하다. 전쟁 중에도 정치적 싸움을 한 시도 내려놓지 않는다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정치가들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남는 일이든 아니든.

참으로 바이러스는 위대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평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니 말이다. 인간들이 잊었던 중요한 덕목을 다시 뼈아픈 상처를 통하여 깨닫게 하고 있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진리를 말이다.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떼어 놓고 얼굴에 마스크까지 씌우고 있다. 이보다 더 강력한 강요가 있을까! 그제야 인간은 울며불며 서로를 향하여 달려든다. 서로의 체온이 그리운 것이다!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아직도 넘어야 할 많은 난관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과 그리고 인간은 해 낼 수 있다는 것과 그 해결안을 스스로 찾아가라고 가르치고 있다. 바이러스의 상황은 우리 인류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나눔의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 비록 그 어려움이 죽음의 고통이든 삶에 대한 몸부림이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까만 밤! 바이러스 동굴에 갇힌 어둠이 짙을수록 어둠을 걷어내는 빛은 찬란하게 빛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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