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예전에 개봉할 때 못 봤던 영화 ‘라디오 스타’(이준익, 2006)를 설 연휴에 집에서 보았다. 영화는 한물간 가수 최곤과 그의 20년 매니저 박민수의 관계를 비춘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히트곡 ‘비와 당신’을 부르며 무대 위에서 열광하는 관객 위로 다이빙하던 88년 가수왕 최곤은 이어지는 2006년 장면에서는 어느새 한산한 라이브 바에서 대낮에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몰려드는 팬들로부터 최곤을 비호하랴 최적의 컨디션으로 그를 에스코트하랴 바쁘던 민수는 이제 바에 앉아 최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느긋이 기다리면 된다. 대신 폭행, 음주운전, 대마초 등 최곤이 사고를 칠 때마다 백방으로 뛰며 돈을 빌려 뒤처리를 하느라 바쁘다면 바쁘다. 이번에도 라이브 바 손님 시비, 사장 폭행 건으로 입건된 최곤은 민수의 고군분투 덕에 영월 MBS 방송지국 디제이로 가는 조건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전화위복이라고, 영월 방송국 디제이가 된 최곤은 짜장면 배달원 장씨, 청록다방 김양, 국밥집 꼬마 호영이, 박민수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기도 하고, 주어진 대본을 읽는 대신 청취자들과 재치 있고 배려 넘치는 통화를 나누며 자기만의 입담을 선보이면서 차츰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급기야 서울방송 진행 제안과 전문 기획사 스카우트 제안도 받는다. 최곤에게는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을 이 기회가 민수 그리고 두 사람 관계에는 최대 위기가 된다. 기획사에서 민수에게 자기를 빼고 최곤과 직접 계약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최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그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민수가 천문대에서 별자리를 보는 최곤에게 하는 말 “곤아, 이거 아니?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이 말을 빌어 영화는 우리가 스스로 빛이 난 것으로 생각하는 많은 순간들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비춰준 빛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준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최곤이 스스로 빛나는 스타로 여길 수 있는 것은 그의 곁에서 묵묵히 그가 빛이 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켜준 민수가 비춰준 빛 덕분이듯이.

그런데 영화를 곰곰이 음미해보면 빛을 주고받는 방향은 일방적인 것이라기보다 쌍방적이라 여겨진다. 최곤과 박민수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분명 최곤이 가수왕으로 잘나가던 시절이 한참 지난 2006년에도 여전히 그의 곁에 남아 동네방네 다니며 돈을 꾸어가며 최곤에 빛을 비춰주는 자는 민수다. 그렇지만 민수를 빼고 자기와만 전속 계약을 하려는 기획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마지막 부활의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민수에게 돌아와 빛을 비춰달라고 울먹이는 최곤도 결국 민수에게 빛을 주는 사람이다.

민수가 던진 “동강이 동쪽으로 흘러서 동강일까? 동쪽에서 흘러와서 동강일까?”라는 화두 같은 질문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누가 빛을 주는 사람인지 누가 받는 사람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작은 빛으로 누군가의 삶을 비춰줄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 주변에서 받은 빛으로 우리 삶이 빛날 때도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빛을 주고 또 빛을 받는다. 그렇게 각자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빛이 나는 스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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