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분명히 올 것은 알고 있었는데, 현실로 이렇게 다가 온 시절은 새삼스럽다. 추웠던 겨울의 꼬리가 아직은 시절을 흔들고 있는데, 삼월은 또 그렇게 오고야 말았다. 누군가는 그렇게 고난의 겨울을 견디며 학수고대하던 삼월이었는데 말이다.
봄바람 부는 삼월의 하늘은 그저 변함없이 머리 위에서 버티고 있다. 삼월은 화사하게 연초록 색깔을 세상에 묽은 수채화로 그리기 시작하고, 섣부른 시절은 나뭇가지에서 산수유의 분홍으로 피어난다. 그 분홍은 부끄러움 타는 봄으로 와서는 온갖 생명들에게 설렘을 안긴다. 그런 삼월의 첫날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 하늘을 맞는다.
지금 우리가 머리에 이고 있는 삼월의 하늘은 어려웠던 나라 잃은 핍박의 시절에 피 묻은 태극기가 나부끼던 그 하늘이다. 침략자의 붉은 혀끝이 우리민족의 가슴을 찢고 그 상처에서 터진 피로 검붉게 얼룩진 나라가 슬펐던 그 하늘이다. 그런 하늘에는 지금에 와서는 말이 없다. 말이 없는 그 하늘 아래의 우리들은 붉은 피의 기억을 잊어가는(?) 듯하다. 주인이 없는 집은 조만간에 무너지거나 빼앗긴다. 주인이 있는 집은 마당에 풀도 뽑고 벽도 바르고 지붕도 이어 주어야 한다.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그 때는 그 누군가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씨 뿌릴 수 있는 땅이 없는 자는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누리는 자인 것은 분명한데, 과연 우리는 이 땅에 무엇을 뿌리고 있는가!
산수유의 꽃봉오리가 흩날리는 날에는 많은 기억과 생각이 머리에서 나와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봄이면 꽃과 같이 여기저기 피어나던 최루탄의 냄새로 걸을 수 없었던 기억에 남은 길들과 생활에 찌들려 살아가기 바빴던 사람들의 얼굴과 공포에 생각의 여유조차 없던 그 시절의 삼월의 산수화는 없었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가 주인이면서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갈등이 분쟁의 불씨가 되고, 그 연유로 패거리 싸움에 국가가 패망하고 그들의 존재가 지구상의 역사에서 없어지기도 한다. 국가는 시절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고 사상을 달리 한다고 하기도 한다. 어느 시절이고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요새 흔한 이야기로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도 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살다보면 살게 되는 것은 비참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자성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틀에서 한 치도 여유가 없다.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는 힘이 없으면 항상 핍박 받는 위치에 서게 되어있다. 하긴, 지구상에 그렇지 않은 나라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서도 말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영광을 누리는 주인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리의 역사를 통하여 보더라도, 우리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시절과 비교하여 경제적인 힘과 인적인 저력을 갖고 있는 커다란 저력을 이제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의 나라들이 이러한 우리나라의 우수한 저력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족하는 때는 분명히 우리에게는 또 다른 치욕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의 세대를 위하여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고심해야 할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 반복의 필연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하지만, 반복의 모양과 색깔은 당연히 그 역사의 현장에 있는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역사는 그저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우리가 선택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삼월의 봄비에 산수유 꽃이 피었다. 벌써 나뭇가지에는 연초록의 빛이 나고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는 산뜻한 박자가 살아난다. 삼월이 또 오고 가겠지만, 산수유의 삼월의 하늘이 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역사를 꼭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