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이 봄이면 계절 따라 피어나는 초록의 생명과 다양한 꽃들로 펼쳐지는 향연의 비밀이다. 지난가을부터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추운 바람으로 서너 달을 버티더니 봄은 싱숭생숭한 사람들의 가슴을 타고 물오른 나뭇가지와 꽃바람 이는 들녘으로 나다닌다. 삶에 시달려 지칠 만도 하건만 헐벗은 메마른 대지에서 봄은 초록의 향연을 시작 한다. 신비로운 태양의 존재 덕인지, 흙 속의 만물들은 양기를 받아 새로운 생명의 역동을 가느다란 가지 끝으로 쫙 퍼올리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흙 속에는 세상의 모든 더러움이 다 묻힌다. 생명체들의 아귀다툼으로 썩어가는 시체도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떤 형태의 개체도 흙에서는 조용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런 흙 속에는 벌레와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살아가고, 또한 인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번쩍이는 다이아몬드나 금도 흙 속에 숨어 있다. 그러고 보면, 흙 속에는 없는 것이 없다!
원래 바위나 뜨거운 마그마나 차가운 얼음처럼 흙 속의 모든 존재들은 먼 옛날의 우주의 먼지로부터 왔다한다. 본래 우주의 먼지였던 흙은 지구상의 수 없이 많은 생명체를 만들어 품고 있다고 한다. 지구촌의 다양한 생명체들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흙 속에서 빚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슬픔도 기쁨도, 모두가 흙 속에서 파내고 또 흙 속에 버린다고 한다.
추악하고 더럽게 냄새나는 인간 세상의 모든 찌꺼기들이 흙 속에서 던져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흙 속에서 모든 더러움은 정화되어 사라진다. 세상의 어떤 존재라도 흙과 연결되면 생명의 기를 받는다고 한다. 흙은 청정하여 고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추함을 모두 받아들이고 정화된 힘으로 만물에게 새로운 화사한 꽃을 피우는 생명의 힘을 부여한다고 한다.
인간의 세상에서는 수 없이 많은 기쁨과 슬픔을 만들어도 결국에는 그것들이 모두가 흙 속에 묻혀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수억 년 동안 우주가 먼지 속에 품어 온 많은 이야기들 중에 하나씩 꺼내어 펼쳐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전쟁으로 세상을 정복한 전쟁광의 이야기도 먼지 속에서 풍겨 나오는 작은 소음이라도 될까? 흙 속에 묻혀 있는 이야기라도 하나 뽑아 올려 들을라치면 세상의 모든 것이 하찮고 인간사 모든 일들이 시들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의 긴 역사가 결코 인류의 짧은 역사보다 더 의미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그리 썩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맞은 봄은 연초록의 생기가 돈다. 아직 잎도 나지 않은 가지에 하얗게 피어나는 목련꽃을 보면 그 꽃잎에 성겨서 웃음 짓는 흙 속에 묻혔던 생각들을 바라다보게 된다. 이 봄철에 흙에서 뽑아 올려 가지에 달아맨 이 느낌이다. 먼 옛날 어느 누군가가 바라다보았던 그 느낌은 아닐까? 가느다란 가지에 매달린 봄바람은 사람의 눈길에 아주 익숙해 있다. 그런 연유인지 그 가지에서 세월 저변에서 서성이던 그 오랜 옛날 어떤 이의 눈길이 흔들리고 있다.
일상의 피곤한 존재들로 부터의 탈출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지친 모습이 애처로운 시절이다. 하늘에는 봄 하늘이 싱그럽게 웃고 있다. 아마도 조만간 지인들과 자유롭게 만나서 떠들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다. 지금은 이런저런 제한된 사회 속에서 모두가 힘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계절의 눈짓 또한 흙에 묻혀있던 어떤 이의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응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봄의 시절은 흙 속에 묻혀 있다가 봄 빛 받고 화사하게 헤치고 올라오는 우리 모두의 절실함을 꽃과 초록의 생명으로 이 계절에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화사한 봄날이다.
이 봄은 흙 속에 묻어 있던 이야기들을 화사한 꽃으로 나뭇가지 위로 퍼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