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지난 26일 한국이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한 62번째 나라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금년 1월 8일 민법 제 915조의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일명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어 한국의 900만 명 아동에 대한 체벌 금지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전 세계 3억 명의 아동이 법으로써 “폭력적인 체벌로부터 완전히 보호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가부장적 인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 내 자녀 체벌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58년부터 이어진 법이 63년 만에 바뀌어 자녀 체벌에 관대했던 사회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 ‘사랑의 매’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야 비로소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놓여있던 걸림돌 하나를 치워버린 느낌이다.

“자녀에 대한 체벌은 교육적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들이 자녀의 엉덩이나 뺨을 때려서는 안된다”고 미국 소아과협회는 설명한다. 이들은 1988년에 “부모들은 체벌이 아닌 다른 훈육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었다. 소아과협회의 단언적 성명발표는 오랜 기간에 걸친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자녀 체벌의 해악이 잇달아 규명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에는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연방법이 없다. 주정부 차원의 관련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합리적 방법으로 신체에 상해를 일으키지 않는 수준의 교육적 체벌은 허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체벌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법적 규제에도 자녀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가정은 여전히 많다. 이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성경, 잠13:24)는 가르침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최근 텍사스대의 템플 교수팀은 ‘훈육’의 목적으로 막대기나 손바닥 등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의 체벌을 경험해도 데이트 폭력을 저지를 위험이 커진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이에겐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사회적 규범과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부모에게서 배운다. 이를 배울 시기에 겪는 체벌은 사랑과 폭력 간의 경계에 대한 혼란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반항하고 흡연하고 가출하는, 이런 아이를 어떻게 말로 해야 합니까?" 아동학대를 저지른 부모들은 하나같이 ‘아이를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학대행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난 앞으로도 이렇게 훈육할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싣지 않고 정말 순수한 동기에서 자녀에게 ‘사랑의 매’를 드는 게 가능할까? 화풀이와 훈육행위 사이의 구분과 경계는 너무 모호하다. 그리고 이런 모호함은 언제든 학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부모들은 양육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훈육하지 않는 게 아니다. 체벌로 하지 말자는 것이다. 체벌이 아닌 훈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답하고 막막한 부모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른바 '부모교육'이다. 받고 싶은 사람에게만 아니라 모든 부모에게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부모가 잘못한다고 때리면서 알려주지 않듯, 맞아도 좋은 아이는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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