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전미영 2M 인재개발원장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대항해 시대에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방향을 알 수 있는 북극성이다. 북극성에 대한 믿음은 아무리 먼 곳도 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실행력을 가져다 준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일에도 마찬가지이다. 북극성과 같은 가능성과 실행력을 가져다 줄 어떤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지향점을 설명할 때 목적 중심의 삶인지 아니면 목표 중심의 삶인지로 설명한다. 이 둘의 근원적 차이는 일의 지향점이 내적이냐 아니면 외적이냐 하는 것이다. 목적 중심의 삶은 정확한 방향을 따라가며 살면서 삶의 동력을 사명이나 소명과 같은 내재적 동기에서 찾는 것이다. 반면 목표 중심의 삶은 짧은 시간에 최고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 예를 들면 삶의 동력을 돈이나 명예와 같은 외적인 것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려고 할 때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과 높은 수입 그리고 보장된 사회적 위치를 위해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다.
누가 옳고 그르다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오는 것처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고 다짐하며 이런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걸고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이 목적은 사명이 되어 그의 내재적 동기를 구성한다. 이와 달리 다른 한 사람은 의사가 되어 돈을 최단 시간에 벌어 자신의 노후에 더 만족한 사람을 살고자 한다면 그가 의사가 된 이유는 바로 돈과 적당한 사회적 지위이기 때문에 외재적 동기로 무장하여 시간을 따라 삶을 살아가게 된다.
목적 중심의 삶은 목적을 향해 가는 동안에 취할 수단이 그 목적과 부합하거나 최소한 그 목적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겠지만, 목표 중심의 삶에서 목표의 성취가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에 수단의 선택에 특별히 제한이 없을 수도 있다. 그 결과 불합리하고도 정의롭지 않은 수단이라도 목표를 이루는데 동원될 수도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 위협적으로 우리 삶에 다가와 있다. 일자리의 문제는 선택의 기회보다 '일 자체'를 해야만 하는 당위성으로 목표 중심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적이 아닌 목표 중심적 삶은 권력이나 명예 그리고 부와 같은 외재적 동기를 기반으로 자칫 불합리하고 부정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우려가 있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어떠한 일을 할 때에도 목적, 즉 삶의 방향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재점검 또는 재구축함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더 큰 실망과 균열을 맛보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다시 살펴 할 때이다. 즉, 지금은 방향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목적지로 나아갈 수 있는 개척자의 마음으로 다시 항해를 시작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