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여기저기서 들리는 봄소식에 문득 엄마 생각이 나 가까이 사는 동생을 불러 고향집엘 갔다. 언제나 갈 수 있는 고향에 엄마가 계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엄마 집을 다와 가는데 크레인이 길을 막고 있었다. 크레인은 큰엄마네 이동식 주택을 설치하고 있었다. 큰엄마 혼자 사시는 집이 협소하여 사촌동생이 구입해줬다고 했다. 비록 이동식 집이지만 새집이라 좋았다.

필자의 고향에는 대부분 연로하신 어른들만 혼자 사시고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대로 십년만 지나면 빈집들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을 것 같아 갈 때마다 서글퍼진다. 눈도 어둡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을 만나 인사를 할 때면 “누구지?” 하고 물으신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자식들은 제 살기 찾아 도시로 떠나고,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분들은 연로하신 부모님들이다. 이제 그 분들이 떠나고 나면 고향은 누가 지켜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고향땅에 농지20만평이 편입되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생길 예정이란다.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 살았던 우리의 부모님들이니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어떻게 마련한 전답인가. 허리를 조이고 배고픔을 참고 견디며 일궈낸 땅 아닌가. 그 땅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오늘이 있기까지 키울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었을 게다.

농부에게 땅은 생명이다. 이 생명을 지키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의 땅이 없어진다 생각 하니 어린 시절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논에서 일 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논길을 걸어가며 개구리도 만나고 뱀에게 놀라 혼쭐나게 도망치기도 했었다. 모내기 할 때면 논둑에 앉아서 먹던 새참과 점심밥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현장에서 탈곡 하지만 그때는 볏단을 집으로 가져와서 낟가리를 높이 쌓아놓고 기계로 털었었다. 그 볏단을 집으로 나르는 일을 동생들과 함께 했다.

가을 벼 수확 철에는 논 웅덩이에서 미꾸라지를 한 양동이씩 잡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동생들과 자주 이야기 하곤 한다. 이런 저런 추억들이 쌓여 있는 농토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운하다.

요즘 코로나 덕분에 환경에 많은 관심이 일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도 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일도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농지는 비를 담아 담수 역할도 하고 국토를 아름답게 하는 정원 역할도 하고 있다. 농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경제적 이익만 쫓아가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가난했던 아버지 삼형제가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지금까지 자식을 낳아 길러 오늘에 이른 고향 산천이다. 삼형제가 자식을 낳아 서로 정을 나누며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향 집을 찾아가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혈육뿐만 아니라 마을 주변에 배여 있는 많은 추억들이다.

물론, 개발도 중요하지만 농사꾼들의 땅만큼은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 따라 개구리 소리가 듣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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