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철렁인지 여러 날이 지나가고 있다. 마음으로 각오는 하고 있지만 항상 불안 불안하다. 그러던 중 병원에 가신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애미야, 둘째 갔다"며 흐느껴 우신다. 여러 날을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병원엘 갔다.
시동생은 이십여 년 전에 의료사고로 인하여 뇌병변장애를 안고 살았어야만 했다. 긴 시간 동안 소송하여 이겼지만 이긴들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잘 나가는 공기업에 다니면서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인정 많은 시동생이었다. 아들의 의료사고 소식에 포효하시던 아버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지나간다.
의료사고 후 꾸준히 애처로울 만큼 재활운동을 하였지만 더 이상의 삶은 허락하지 않았다. 2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동서와 어머님의 처절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아버님 곁으로 가고 말았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서러움이 밀려온다. 본인의 잘못도 아니고 타인의 실수로 인하여, 소중한 삶을 허무하게 살았어야만 한 서방님의 삶은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가족들도 이럴진대 본인은 얼마나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까.
장례식을 치르면서 필자는 많은 반성을 했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동서의 삶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오열하는 동서를 보며 마음이 저렸다. 오랜 세월 뒷바라지 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은 동서가 마지막 가는 길에 쏟아 내는 말이 필자의 가슴에 와서 박혔다.
그 동안 고마웠다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웠다고, 아프지 않은 곳에 먼저 가 있으라며 통곡하는 동서를 보며 그 동안 쌓였던 설움이 복받친다.
장례식을 마치면서 인생 참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동서에게 위로의 말과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담아 지어주며 집에 가서 읽어 보라고 주었다.
동서를 생각하며 지난날을 뒤 돌아보니 너무 고맙고 미안한 일들이 많았다.
남편의 아픔에도 불평하지 않고 그 동안 수족이 되어 보살핀 것들이 너무 고마웠다. 힘들 때 제대로 위로도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
이제부터는 동서만을 위한 삶을 살라는 말을 쓰려니 목이 메어 왔다.
지금까지는 남편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 남은 삶은 오직 본인을 위해서 후회 없는 멋진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요즘 삶이 힘들다고, 맘에 안 든다고 가정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들이 결손가정으로 이어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남편을 위해 이십여 년을 애 써준 동서에게 너무나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엄니의 슬픔도 시간만이 해결해 줄 것이다.
울고 싶을 때 실컷 우시라고 위로해주는 것 외에는 해 드릴 것이 없다.
만약, 자식도 없는 동서가 아픈 남편을 두고 떠나버렸다면 모든 것을 엄니하고 필자하고 다 감당했어야 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도 고마웠다.
지금의 이 아픔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음 편하게 옛날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늘 고맙고 미안한 동서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갈 수 있기를 오늘도 적극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