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영화 '어퓨굿맨A Few Good Man'(1992, 롭 라이너)에는 질서안보를 위한 위력 행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보호가 상충되면서 빚어지는 치열한 법정 공방이 나온다.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막사에서 산티아고 일병이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에게 폭행을 당한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과 코드 레드의 연관 여부를 밝히도록 재판에 회부된다. 코드 레드는 법에 위촉되는 체벌로 군 훈련에 잘 못 따라오는 병사에게 자극을 주는 일종의 얼차려이다. 피해자 측 신참 책임변호사 캐피 중위는 군 권력 측 회유에 타협하며 폭행 병사들에게 가벼운 형을 구형하여 대충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선임 갤로웨이의 저지와 상부 명령에 따랐다는 폭행 병사들의 주장에 차츰 막강한 권력 뒤에 은닉된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면서 진실을 밝히고자 최고 사령관 제섭 대령을 법정 증인으로 세워 심문한다.
대령은 보통 명예, 신조, 충성 같은 것을 쉽게 내뱉지만 최전방에서는 그런 것들이 말이 아니라 생명 자체라며 자신의 책임 권한을 문제 삼는 캐피 중위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최전방에서 훈련을 제대로 못 따르는 병사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며 산티아고의 죽음이 안 된 일이지만 그의 죽음이 대신 다른 목숨을 살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무장 경비와 벽으로 둘로 싸인 곳에서 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방위를 지키는 군대 총사령관으로서 자신이 진 중차대한 임무를 토로하며 캐피 중위와 청중을 압도해간다. 괴팍하게 보이지만 그가 전방에서 안전을 지켜주기에 모든 사람들이 편안히 잘 수 있는 것이라는 변론은 십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제섭 대령은 그냥 '굿맨'이 아니라 영화 제목처럼 '어퓨'가 붙은 '굿맨'이다. 원래부터 산티아고를 죽이려고 의도했다기보다 군 기강을 잡기 위해 골치 덩어리 산티아고에 얼차려를 가하도록 했던 점에서 대령은 결백할 수 있다. 문제는 산티아고를 전출시키도록 권한 부하의 간언을 무시하고 코드 레드 명령을 내리고는 그 책임을 상대에 전가하고 힘없는 병사들에 누명을 씌운 데에 있다. 최고 사령관도 실수할 수 있다. 다만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시정하면 실수는 지워지고 결박은 풀리지만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자 잘못에 불의를 더할 때 실수는 만회할 수 없는 오명으로 남게 된다. 작은 흐트러짐도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에서 대령의 판단과 조치가 불가피하였을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결백이 전적일 수는 없는 것은 자신의 위신 때문에 사건을 조작하고 부하들에 잘못의 책임을 지우며 권력으로 자기보다 약한 자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점에 있다.
그렇다면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은 어떨까? 캐피 중위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대령이 코드 레드 명령을 시인하면서 두 병사의 무죄는 밝혀졌지만 평소 모범 해병이었던 이들은 불명예제대를 선고 받게 된다.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산티아고를 구타한 것이지 자발적으로 그를 폭행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은 결백하다. 하지만 상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그 어느 명령보다 높은 지상명령을 외면하고 맹목적으로 권력에 굴복했다. 그들도 완전 '굿맨'은 아니고 '어퓨굿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