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매미 소리가 찌는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도 한낮에는 기승을 부린다. 말복도 칠석도 지났는데 떠나가야 할 것들이 뭉그적대고 있다. 모든 것들이 오고 가야한다는 사실은 어쩔 수는 없는데 말이다. 이런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땀이 흐르는 여름에 한 사람을 만났다. 아주 오래 전부터 유명한 사람이다.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가기 마련인데, 이번 여름에 만난 이는 끈질기게 그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유명세를 연유로 그를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실 그를 만난 것은 그에 대한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주 유명하여 많은 책들과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도 언급되는 이다. 그는 못생겼지만(?) 현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는가의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연유로 만난이가 기원전 399년경에 살았던 소크라테스이다. 사실 그를 만나는 것은 아주 쉬웠다. 그의 지인인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아테네 법정에서의 재판과정을 통해서였다.

우선 악법도 법이라는 말과 관련된 것들은 이러했다. 라틴어로는 ‘Dura lex, sed lex.’라고 하고, 이는 고대 로마의 법률가 울피아누스가 처음 언급하였던 것이라 한다. 또한, 이는 종종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라 일컬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참으로 멋진(?) 말이고, 학창시절에 준법정신을 배우는 시간에는 항상 위대하게 등장했던 말이다.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해석에 관하여, 2004년 11월 7일자 동아일보신문에서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의 법학부 교수 오다카 도모오가 1937년 퍼낸 "법철학"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라고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정치나 법에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에테네 법정에 선 그를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는 한마디로 법정에서 오만 했다. 굳이 법정에 앉아 있는 아테네인(재판관)들의 속을 팍팍 긁을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그는 죽음을 예지한 사람처럼 모든 상황을 최악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해 온 것들에 대하여 부정할 용기(?)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독배를 마셨다. 그렇게 독배를 마신 이유는,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면서까지 삶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부정하는 오류를 피해가고 있었다.

아니, 그러잖아도 무더위에 열 받는 일들이 하나 둘도 아닌데, 생뚱맞게 뭔 기원전 사람인 소크라테스여? 왜 그를 만났느냐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믿었던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는데, 그 진실의 여부를 확인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더 커다란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왜 그는 독배를 마셔야만 했는가?’라는 커다란 화두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형장으로 떠나는 그는 "이젠 떠날 때가 되었군요.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중에 어느 편이 더욱 좋은 일을 만날 지, 그건 신밖에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지어진 사형이라는 판결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반항하고 있었다. 아니, 반항이 아니라, 그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한계성에 대하여 이렇게 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죽음일지라도 정의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독배를 통하여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법이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올바른 법이라도 법을 적용하는 방법에 따라 인간에 의해 악법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독배를 들어 경고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번 여름은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로 스쳐간다. 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불편하다. 그리고 어쩌면 불편한 많은 진실을 덮으려 하는 것은 진실의 독배를 피하고자 하는 비겁함이다! 그 비겁함이 죽음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과연 무엇을 위하여 독배를 들을 것인가?’ 아테네의 철인은 그렇게 지금도 우리에게 피 묻은 입술로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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