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노후를 예습하듯 너무 행복하면 깜짝 놀라 원고를 썼다. 복(伏) 중, 글을 쓰는 고통은 기묘한 슬픔도 스며있다." 박완서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중 희미하게 떠오른 단락이다. 새끼들 휴가 길 배웅 후 부자 된 기분으로 틀어박혀 글을 쓰셨단다. 요즘 필자역시 엇비슷한 처지다. 곧이곧대로 '집콕'도 꽤 단련됐다. 휴가 아닌 '멈춤' 팬데믹에 바깥 풍문 괘념치 않고 연식 지난 책부터 훑었다. 언제 읽었나 싶게 좀처럼 기억조차 뭉그러진 낯선 문장이 기를 죽인다. 여덟 권 째 완독 무렵 40여 년 전 휴가 때 죽마고우 가족과 설악산을 품은 빛바랜 사진 두 장, 사진 속 친구는 예순 아홉 편력(遍歷)도 요약하지 못한 채 하늘공원 두 평짜리 독방으로 다시 못 올 장기휴가 4년차에 들었다.
◇휴가-서점-책-독서
2년 족히 코로나 관련 의료진·공무원·봉사자와 K방역을 지켜온 국민, 넉 아웃 상태지만 휴가 안달 겨를조차 없다. 델타 변이와 돌파감염 등 확진자 증가로 사회적 거리 '1~2주, 4주일 연장, 굵고 짧게, 지역별 강화' 속 딱히 어딜 떠날 형편도 아니다. 이럴 때 '뭘 해야 할지' 선택을 고민한다. 흠 잡힐 일은 되레 더 큰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일까. '서점-책-독서' 가 트렌드다. 여름이면 텅 비었던 학교와 우리지역 도서관(실)도 대부분 가족단위로 북새통이다. 필자의 손주도 그 가운데 끼었다. 네 살 적부터 마을 독서실과 시립도서관에 묻혀 하루 평균 독서량 평균 60권, 책 속 세상맛을 느낀 게 분명하다. 자고이래 '책과 담 싼 백만장자보다 달랑 한 권 책 쥔 배고픈 거지가 낫다' 했다. 물론, 실시간 정보제공 시스템 진화로 볼거리 홍수 시대니 휴대폰과 손가락 놀림이 책의 기피를 부채질하는 건 틀림없으나 조화로운 인생 환기에 독서를 대체할 또 다른 성장 판은 글쎄다. 가능하다고 믿으면 뇌는 자동적으로 긍정 이유를 찾아 준다. 지식들을 그물 짜듯 종횡으로 연결해 다시 들춰야 할 목록 등 변화무쌍한 스토리까지.
◇빌 게이츠 고백
사실상의 대선 개막전은 닭쌈처럼 비쳐진다. 할 말 안할 말 서슴지 않는 '고난의 레이스'로 바람 잘 날 없다. 출처와 근거조차 모호한 루머를 부풀려 특종을 노리다 '아님 말고'식 헛스윙도 당혹스럽다. '돌림 빡, 소·닭 잡는 칼, 비루먹은 개, 현대판 노예…' 왜 하필 '혐오(嫌惡)시리즈'로 장군 멍군일까. 한술 더 떠 'X파일 어쩌고저쩌고' 재탕 3탕 등 '혼 좀 나볼래? 여기서 그만 접으라'식 구태를 재현한다. '세상에 맞을 짓이란 없다'는데 좌충우돌 날카로운 퍼팅은 밋밋해졌고 이런저런 허무가 덮친다. '우리'를 선동질 해놓고 '나'만 고집하는 어처구니에 정치 뉴 노멀(New Nomal)이 헤맨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 고백 중 '세상 꿰뚫어보는 능력과 그걸 실천할 전문지식을 책 속에서 얻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건 하버드 대학도 아니고 어린 시절 마을 도서관' 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진짜 '에이스'가 된 중심은 독서였다. 그래서 후보군에 묻는다. '언제부터 독서의 빗장을 걸어둔 것인지', 퍼즐조차 몰라 어영부영 헤맬 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