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눈] 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가족이란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로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이나 구성원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만큼 가족 간의 유대 관계가 끈끈하게 맺어진 경우도 많지 않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듯이 일가친척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가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가 없던 시대에는 동네 어른이 교사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언젠가 이웃의 다양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당일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주제로 다루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도시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가족의 개념도 많이 변화하였지만, 여전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먹하고 어색하다. 

프로그램에서는 사회자가 이야기를 진행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실제로 출연하기도 했다. 평소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부자간의 속마음을 방송에서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지만, 의외로 솔직한 답변이 감동을 주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서로에게 살갑게 다가가 원만한 부자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 결론이다. 하지만 문제는 속마음을 구체적이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에 있었다. 그것은 유교에 토대를 둔 가부장적 아버지의 역할에 한계를 드러내어 부자간 소통의 법칙을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선, 발화하는 언어의 속뜻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언어는 겉뜻과 속뜻이 존재하며 겉뜻은 감정적이나 속뜻은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속뜻을 알지 못하면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용돈이 필요 없다는 아버지 언어의 속뜻은 용돈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랑한다는 추상적 말보다 구체적인 칭찬 한마디가 더 중요하다. 하늘에 떠 있는 멋있는 구름보다는 한줄기 빗방울이 농작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사랑이란 말은 어렵고 난해하지만, 칭찬은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어 서먹한 부자 관계를 극복할 수 있다.

끝으로, 작은 목표라도 달성했으면 우선 감탄부터 하고 평가는 나중에 해야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많은 간섭을 받고 자란 아들은 자아 존중감이 낮은 경향이 있다. 이는 교실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자신은 아버지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아버지와 더 많은 거리를 만든다. 깊은 그늘에서는 작물이 자랄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이치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주장하듯이 아버지와 아들은 본능적으로 경쟁 관계일 수도 있다. 이 콤플렉스는 아들이 성장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무의식적 조직자로 남는다. 그러하더라도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서로 인식하고 노력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아버지의 등'이라는 시로 이 땅의 모든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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