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어 책도 많이 못 읽고, 나이가 많아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감각도 더뎌 참신한 소재 찾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 내 자신에게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실력은 안 되더라도 너는 행운을 끌어오는 힘을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끊임없이 내 자신을 꼬드겼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놓고 펜 사인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내 책이 수백만부가 팔린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장면처럼 아주 선명하게 그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렇게 마음으로만 자신을 꼬드기는 것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2009년 3월 어느 날 남편에게 양복을 사러 가자고 했더니 입을 일도 없는 양복을 쓸데없이 왜 사느냐고 했다. 나는 내 시상식에 입고가야하기 때문에 꼭 사야한다고 우겼다. 남편은 '개 꿈 깨'라고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양복을 샀다. 그것만으로도 뭔가 부족해서 또 다른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내 인세통장에 인세가 막 들어오고 통장에서 다르륵 다르륵 프린트되는 소리가 들리는 상상을 했다. 상상하는 순간 무척 신이 났다. 그러다 문득 굳이 상상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기로 하고 통장 하나를 만들어 '권영이 인세통장'이라고 표지에 붙여놓고 매일 한 번씩 꺼내보았다. 그러다가 그 통장을 은행으로 가져가서 자동화기계에 집어넣었다. 당연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세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인세 들어온 게 찍히는 소리가 난다는 상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사기를 치기시작한지 8개월 만에 드디어 인세통장에 1,000만원이 들어왔다. 제21회 신라문학상 소설부분 대상을 받았다. 당연히 남편은 내가 사준 양복을 입고 함께 시상식에 참석했다.
2010년 1월에"장편동화 하나 당선돼서 볼로냐 세계도서전에 공짜로 가야 되는데"하고남편에게 말했다. "상 한 번 받고 나더니 간땡이가 부었군."하며 남편은 어이없어 했지만 나는 당연히 그럴 거라는 듯이 수시로 그런 말을 했다. 그렇게 단 한순간도 내 자신에게 사기 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사기인지 나 자신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남편은 내가 허풍쟁이에 몽상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완벽하게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사기꾼 놀이를 한지 10개월 만에 제18회 대교 눈높이아동문학 장편동화 부문이 당선되어 2,000만원의 상금과 볼로냐 세계도서전 공짜 티켓을 따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남편은 축하한다는 말 대신 "당신 점쟁이야? 이런 결과를 어떻게 미리 안 거야?" 하고 놀랐다. 나라고 어떻게 결과를 미리 알았겠는가. 나는 그냥 내 자신을 낮이나 밤이나 세뇌시켰을 뿐이다. '넌 반드시 된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라.'그렇게 계속 사기꾼 놀이를 했을 뿐이다. 그 놀이를 하는 동안 너무 행복했고, 행복하니까 그 놀이에 흠뻑 빠져서 놀다보니 어느새 진짜가 되어 있었다.
이런 놀이를 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시간도 자투리 시간을 쪼개서 하면 된다. 같이 놀 파트너도 필요 없다. 얼마나 경제적인 놀이인가. 무엇보다 놀이 끝에는 반드시 꿈도 이루어진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재미난 놀이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이 사기꾼 놀이에는 현재 나의 상황, 실력, 여건 등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자신을 믿는 게 다이다. 설사 사기 친 게 들통 나도 절대로 사건화 되지 않는다. 자기와 자기가 서로 적당히 합의하면 되니까.
사기꾼의 최후가 이렇게 행복한 줄 알았으면 좀더 일찍 시작할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어 이 글을 읽고 관심 있는 분에게는 그동안 사기 치는 과정에서 습득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주고 싶다.
/권영이 증평군청 기획감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