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원장·아동문학가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는 / 가을비 우산 속에 / 이슬 맺힌다.' / 가수 최헌이 생전 구성지게 부르던 노래 한 소절을 놓고 우월적 지위를 떠올린다.
최근 아프칸 특별기여자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입소 브리핑 관련 '가을비 우산 속' 법무부 차관 의전으로 시끄러웠다. 애초 사과부터 했어야 옳다. 피해갈 궁리만 하는 것도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10분 남짓이었다지만 강파른 '황제 의전'에 얼떨떨했다. 대선주자까지 뜬금없이 우산 들고 나와 뉴스를 비아냥거리게 만든 건 졸렬한 센스였다. 그러나 곰곰 들여다보면 의도 밖 실수도 있으려니 싸잡아 '질'이란 접미사를 붙여야 될 만큼 '진짜 갑질'은 아닐 터./ 그대 내겐 단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 지금 비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우순실, '잃어버린 우산' 일부) /
◇여전히 '갑'은 '뻔 순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여러분의 가족 중 한사람…' 어느 대형마트에 부착된 문구다. 주차요원을 무릎 꿇린 '백화점 모녀 사건' 당장 살인이라도 할 것처럼 생쇼를 했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 싶은 상대에게 걸핏하면 욕 퍼붓고 면박일색 허세 앞에서 겉으론 웃어야하는 수직 관계, 그런 인간더러 빌어먹을 무슨 '손님은 왕'이라 했나. 일부 악덕 기업의 오너 리스크 또한 가관이다. 종 부리 듯 차별과 편견에 심지어 주먹질 발길질로 사회적 약자를 깔고 뭉갰다. 그러나 '죄송하다. 사죄드린다' 상투적 쇼와 화려하게 복귀하는 '뻔순이'란 모순을 어쩌랴.
10여년 전, 필자도 뜻밖의 민원에 꽤 곤혹스러운 적이 있다. 하필 청사이전으로 정신 빼던 날 다짜고짜 들이대는 학부모 전화를 받았다. '학교 급식소 갑질을 교육청에서 알고 있긴 한 거냐'며 마구 퍼부었다. 1학년짜리 자녀의 급식관련 불만 이유였다. 내용인즉 동그랑땡(육전?) 반찬을 다른 아이들 보다 두개를 덜 받았다는 직설적 호통이었다. 순간 '뭘, 그깟 먹는 걸 갖고' 보다 '학부모' 란 게 조심스러웠다. 숨고르기 후 "같은 메뉴가 나올 때 오늘 손해량을 두 배로 주면 어떨까요? 메모 준비하고 있으니 학교와 학년 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이내 대꾸는 없었다. 비슷한 시기 파출소장이 근무 중 맨발로 들이닥친 아들 뻘 취객의 구타로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며 집기까지 파손한 피의자 주제에 며칠 뒤 찾아와 반성은커녕 '내 구두 찾아내라…' 헤드라인 기사를 탔다.
◇'주제 파악' 부터
충북교육청의 소속교직원 '갑질문화 설문조사' 결과 2019년 대비 4.7% 감소했으나 여전히 남성보다 여성, 관리자에 비해 실무자 쪽 아픔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고위공무원과 정치인의 채신머리'는 직함을 추월한다. 고압적 어휘와 상대 폄훼, 그래놓고 경쟁하듯 '과잉·레전드·황제' 의전과는 애증관계로 뜨겁다. 이번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의회 의원 대부분 청원경찰들에게 복무규정에도 없는 대리주차를 수년 간 관행처럼 시켜온 것으로 알려져 '주제 파악' 논란이 일고 있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국민 앞에서 그런 꼴을 보였으니 'X난 놈…'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야. 언제까지" 소위 특권층의 제왕적 일탈, 자주 봐온 드라마 대사('하이킥' 중에서)를 빌어도 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