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홍세용 진천 성모병원 신장내과장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에 고의적 자해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 수는 인구 10만 명당 31.7명(자살률)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높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8.8명) 중에서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구체적인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37.8명 (2019년 기준)이 자살을 한다. 38분마다 한 명이 자살로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살을 시도 했지만 완료하지 못한 사람 수는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살 수단으로 음독을 많이 선택하는데 사실 음독을 해서 자살을 완료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10% 미만이다. 이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어림잡아 5-10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살 환자가 많다는 것은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고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살 동기는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다. 10-30세는 정신적 어려움, 30-50세는 경제적 어려움이 대부분 이지만 65세 이상 노인층에서는 육체적 어려움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별 인구를 표준화하여 산출한 연령 표준화 자살률(노인자살률)은 충남, 전북, 충북, 강원 순으로 높다. 따라서 효과적인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건강을 잃게 된 지방 거주 노인들이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파악하고 적절한 예방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노인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대학병원 재직기간에 농약중독 연구소를 운영하며 농약을 음독한 환자를 만 명 가량 진료했다. 95% 정도는 자살 목적으로 음독한 환자였는데 이들 중 60% 가량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사망하였다(과거에는 파라콰트 성분의 맹독성 제초제 때문에 사망률이 높았으나 이 농약은 2012년 이후 사용이 중단되었음). 자살 동기 파악을 위하여 가족 면담은 물론이고, 생과 사를 넘나들며 고뇌에 찬 결심을 하고 방법을 선택하여 실행한 당사자들의 속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했었다.

지방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암이나 기타 치료가 어려운 병에 걸리면 자식들은 물론이고 주위에 피해를 주기 싫다는 생각을 먼저 하신다. 또한 팔 다리 관절이나 허리 통증으로 수술 혹은 시술을 받았지만 뒤끝이 깨끗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아플 때에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계획적인 자살 보다는 우발적인 경우가 더 많고, 특히 음주 후에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동거하는 가족이 있지만 알코올중독 혹은 성격 부조화 등으로 가족 간의 우애가 깨진 채 지내는 노인들이 특히 문제다. 이런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가족, 친지들의 역할이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갖출 것 다 갖춘 세련된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볼품없는 외모, 풍족하지 못한 주머니사정, 품위 있는 생각과 절제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대상이 가족일지라도 쉽지 않다. 병들고 남루해진 부모님께 지극 정성인 젊은이들이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인 이유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일이다. 필자가 병아리 의사가 되고 난 어느 날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날 잡아 내려와서 외할아버지 병문안을 함께 가자고 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 관절통이 심하여 몸져누우셨으니 약을 좀 준비해오라고 하시는데 무슨 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종합비타민 한 병을 사 들고 갔다.

외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어렵게 성장하고 서울에 가서 의사가 된 자랑스러운 외손자가 건네준 약을 복용하고 관절통이 싹 나아버렸다고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시간 만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후에 들으니 걷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것이 비타민이지만 외할아버지에게 건네지는 순간 명약으로 둔갑한 것이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 조그만 사랑으로 농촌의 병든 노인들을 보듬을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하나만 있어도, 아니 애완동물이 하나만 곁에 있어도 자살을 시도하는 노인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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