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엄마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고 왠지 눈물이 난다.
신이 세상 모든 곳에 존재 할 수 없어 어머니를 대신 세상으로 보냈다 할 만큼 소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중한 엄마 생신을 맞아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동생들도 모두 모였다. 손녀딸들이 만들어 온 케이크 촛불을 86대신에 68로 자리를 바꿔 불을 붙였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68세의 젊은 엄마, 할머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일게다. 케이크위에는 손녀딸들이 할머니 모습을 예쁘게 그리고 그 위에 "장금원 여사님, 다음 생에도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해 주세요" 라고 써서 우리 모두를 뭉클하게 했다.
오랫동안 엄마 생신을 오늘처럼 오붓하게 함께 하지 못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두 분 생신이 비슷해 아버지생신 때 모이고 엄마 생신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엄마 집에서 7남매의 김장을 함께 시작하면서부터 김장하는 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엄마 생신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김장 일정이 늦게 잡혀 오직 엄마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엄마가 환한 모습으로 케이크 촛불을 끄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와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딸을 여섯이나 낳고 많이 울기도 하셨고 맘고생도 많이 하셨던 엄마다.
막내로 낳은 아들은 어느새 세 딸의 아빠가 되어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이번 생일에도 엄마에게 안마기를 사드리자며 선뜻 나서기도 했다.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다 소중하고 훌륭하겠지만 우리 칠남매는 우리 엄마와 같은 엄마는 세상에 없다고 말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딸을 많이 낳아 할머니에게 구박을 받으며 살았지만, 막내로 낳은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희생으로 키우셨다.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필자를 제외한 동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킨 엄마다. 지금도 굽은 허리로 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퍼주는 재미로 사신다. 울 엄마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가 개가를 하여 사촌오빠와 함께 사셨다고 했다. 부모님 사랑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당신 자식을 키우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키웠다고 하셨다.
이런 엄마에게 이보다 더 잘 키울 수는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서로 다툼 없이 우애를 다지며 잘살고 있으니, 모든 것이 엄마의 무한 희생과 사랑 덕분 일게다.
엄마는 딸을 많이 낳아 고생도 많으셨지만, 그런 딸 덕분에 해외여행도 여러 번 다니셨다. 팔순 때 딸들과 일본에 갔을 때 "딸 덕분에 이렇게 좋은데 온 것이 꿈만 같다고" 하셨다. 이번 생일날에도 그 때의 사진을 보며 좋아하셨다. 친구들 중에는 엄마가 안 계신 친구가 많다. 필자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가 있어 좋겠다."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가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잘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지금도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아버지께 잘 해드리지 못했던 아쉬움을, 엄마 때만은 반복하지 않아야겠다고 촛불을 끄고 있는 주름진 엄마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을 부여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