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임인년(壬寅年) 새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호랑이 가운데도 검은 호랑이는 강인함을 상징한다. 용맹의 표상이며 호랑이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예부터 호랑이를 신성하게 여겼다.

호랑이는 옛날에는 그저 무인의 용맹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차용되거나 민간에서 산을 수호하는 신령쯤으로 인식되는 정도였다. 그래서 전래동화와 조선시대 민화의 단골 소재였던 호랑이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다산의 목민심서에서 호환 제거를 목민관의 주요 임무라고 했을 정도로 호랑이는 조선시대까지 한반도를 호령했다. 자연에서 가끔 목격되는 백호와 달리 흑호는 발견 사례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고 한다.

실존하는 호랑이 가운데 흑호라고 불리는 호랑이는 엄밀한 의미로 검은 호랑이가 아니라 무늬나 점이 크고 짙어지는 아분디즘이 발현된 호랑이를 말한다. 이 현상은 특이하게 벵골 호랑이에게서만 매우 드물게 관찰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호랑이 가죽은 빛깔이나 품질에서 세계 제일로 꼽혔다. 한 때는 명·청나라에서는 호피를 꼭 조선의 조공품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호랑이 한 마리 가죽이 대궐 한 채 값과 맞먹었을 정도로 귀했다.

호랑이는 이처럼 두렵고 귀한 존재여서 신성함의 대상이 됐다. ‘범’이라는 우리말이 금기시되면서 명칭은 ‘범 호(虎)’와 ‘이리 랑(狼)’을 합친 호랑이로 대체되어 불렀다. 호랑이 그림은 나쁜 기운을 막는 벽사(邪) 이미지로 쓰였다.

그래서 새해 첫날 호랑이를 그린 세화로 액막이를 했고, 단오에는 쑥으로 만든 호랑이 형상의 애호로 악귀를 막았다. 그랬던 호랑이가 한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88서울올림픽의 역할이 컸다.

환경부가 2017년 실시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 생물 베스트10’에서 1위로 꼽힌 게 호랑이다. 88 서울올림픽에 이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마스코트로 호랑이가 선정된 이유다.

그 후 호랑이는 최소한 남한의 자연환경에서 절멸된 상태임에도 대외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이 됐다. 심지어는 당시만 해도 실체가 불분명했던 ‘한국 호랑이’를 실재화하고 국내로 반입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에 사활을 걸다시피 해 정부는 올림픽 마스코트 제작에 공을 많이 들였다. 호랑이는 잔인하다는 이미지를 벗고 친숙하면서도 한민족의 웅혼한 기운을 상징하는 동물로 각인됐다. 호랑이 해를 맞아 우리나라 국운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이미 국가 경쟁력을 높였다. 우리나라는 올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검은 호랑이는 뛰어난 지혜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갖췄다고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 못지않게 영민하게 움직이며 기회를 포착한다는 의미이다.

정부에도 검은 호랑이 같은 영민함이 필요한 때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는 호랑이와 범이 포함된 지명도 많다. 새해 일출 명소인 경북 포항 호미곶을 비롯해 부산 수정산 자락의 범일동, 범내골, 범천동 등 전국에 389곳이나 있다.

호랑이 해는 공휴일은 67일로, 일요일을 포함해 총 118일을 쉴 수 있다. 지난해에 비해 이틀 늘었다. 대통령선거일(3월9일)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6월1일)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쉴 수 있는 날은 여느 공휴일처럼 기념과 재충전의 날로 여겨진다.

그래도 달력에 빨간 날이 많은 건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여유롭게 한다. 희망이 넘치는 호랑이 해를 맞아 모든 국민들의 바람은 마스크 없는 세상이 꼭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으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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