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명 시인
▲ 정진명 시인

'벙어리'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벙+어리'의 짜임입니다. '어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니, '벙'의 뜻만 알면 됩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조선 시대에 쓰이던 말 중에 '벙을다'라는 움직씨가 있습니다. '버울다', '버우다'와 같이 꼴이 바뀌어 쓰이는데, 막혔다(塞)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제 뜻이 또렷해지죠. 벙어리란,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게 막힌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하, 입으로 나와야 할 것이 나오지 않는 사람의 딱한 상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현한 말이구나!'라고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이토록 알맞게 드러내고 그릴 수 있는 우리말의 표현력에 크게 감동합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아래아  imagefont글 ' 워드프로세서로 쓰는 중입니다. ' imagefont글'에는 맞춤법 자동 알림 기능이 있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리면 자동으로 그 글씨 밑에 붉은 줄이 쳐집니다. 그런데 '벙어리'라는 말에도 붉은 밑줄이 그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벙어리 : '언어 장애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

앞서 혼자서 우리말의 풍부하고 적확한 표현력에 울컥했던 감동이 와장창 깨집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물을 것도 없이 한글학자들이겠지요. 국립국어원에서 근무하는 대단한 학자분들의 결론이겠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소설가 나도향은 소설 제목을 왜 「벙어리 삼룡이」라고 붙였을까요? 당시 나도향은 겁대가리 없이 어찌 전국의 모든 벙어리들을 얕잡아 이르렀을까요? 이렇게 얕잡아 이름을 당한 분들에게 혼날 것을 뻔히 알면서 그랬을까요? 이상하지 않은가요? 저만 이상한가요?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당시에 '벙어리'는 '얕잡아 이르는 말'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벙어리가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면 우리 국어 생활은 정말 큰일납니다. 왜냐? 써서는 안 될 말이 엄청 많거든요. '벙어리장갑, 벙어리저금통, 벙어리뻐꾸기, 글벙어리, 반벙어리' 같은 우리말은 써서는 안 될 말이 될 것이고, 다음과 같은 속담도 써서는 안 될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꿀먹은 벙어리.
벙어리 속은 그 어미도 모른다.
벙어리 소를 몰고 가듯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이런 속담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속담에는 우리 겨레의 많은 슬기가 녹아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할까요?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는 1925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소설의 제목에 얕잡아 이르는 말을 썼을 리는 없습니다. 이때만 해도 '벙어리'는 얕잡아 이르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겨레라면 누구나 쓰는 흔하디흔한, 그리고 높낮이가 없는 평범한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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