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는 내 숙명… 쇳물 부을 때 강박은 삶의 근거"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하는 밤샘작업, 그래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하루를 연다.
작업 도구는 항상 옆에 두고 있다. '느낌'이 올 때마다 수시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에겐 편하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의 루틴이 됐다.
임인호씨(60)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제 101호 금속활자장 기능보유자이다.
그가 견지하려는 것은 금속활자장이라는 타이틀 보다 장인의 자세를 가지려는 노력이다.
'나는 이 길을 간다. 나에게 이 길은 숙명이요, 천명이다.'
그의 삶에 금속활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다.
윤택한 삶을 원했다면 그는 이 길을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성취감과 자긍심이 이 길로 그를 이끌었다고 한다.
꽃을 보고, 자연을 보며 그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꽃과 자연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개념은 활자다.
활자 꺼낼 때 그 활자의 선과 획과 입체적 아름다움은 그 무엇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쇳물 부을 때 '강박'에 이를 만큼의 긴장감은 그에게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장엄하고 숭고한 예식이었다.
유년의 가난… "앞만 보고 갑니다"
빈곤했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서무실 복도에서 무릎 꿇고 두 손 들면서 벌을 서야 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한 기억들. 빛바랜 사진처럼 먼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그때 가난한 삶은 두려운 것이었다.
선친은 연풍 시가지에서 아주 작은 구멍가게를 했다. 1원이고 5원이고 10원이고, 풀빵과 국화빵을 사며 아이들의 내미는 코 묻은 동전 몇 닙이 그의 가정엔 생계의 원천이었다.
그는 연풍초등학교와 연풍중학교를 졸업한 뒤 음성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개월 남짓 다니다 중퇴했다. 집 떠나 음성서 생활할 여건이 안됐기 때문이었다. 방 얻어 자취라도 해야 하는 데 가난한 집엔 그 돈마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친이 작고했다.
구멍가게로는 도저히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큰 맘 먹고 시작한 돼지농장이 되레 치명타가 됐다. 밤을 낮 삼아 일을 했고, 튼실하게 살찌운 돼지를 시장에 내다 팔면 꽤 큰돈을 만질 수 있는 터였다.
그때 돼지 파동이 덮쳤다. 설상가상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부친은 급성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7남매의 살길이 막막해졌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지나간 것은 지난 일일 뿐…. 저는 앞만 보고 살아갑니다."
엄혹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죽기살기로 버텨내야 한다는 결심은 그때 섰다.
막노동 전전하다 서각에 입문
그가 정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결혼한 후였다. 조카뻘 되는 어린 친구들과 다녔지만, 배운다는 것이 좋았다. 교복 입은 친구들이 너무나도 부럽던 배움의 한을 그때 풀었다.
2013년엔 동국대학교 석사과정도 마쳤다.
학비도, 생활비도 없어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혈혈단신 상경한 그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했다. 막노동은 어린 그가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그의 삶에 하나의 전환점이 생겼다.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을 내내 지켜보던 신영창 선생이 그를 제자로 삼은 것이었다.
1984년 신 선생으로부터 목판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 새기는 일을 배웠다. 생계의 방편으로 삼기 위해서였는데, 이것이 그의 삶에 운명적인 만남을 가져다 줄 것을 그는 그때 알지 못했다.
열심히 배웠고, 독립할만한 수준이 됐다. 1993년 그의 고향인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무설조각실을 차렸다. 목판에 그림과 글씨를 새겨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품 하나 하나 끝날 때마다 보람도 느꼈다.
그럼에도 삶의 언저리 어딘가가 늘 허전했다. 이 작업이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인가 자문할 때마다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오국진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
1996년 금속활자장인 오국진 선생을 만났다.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무설조각실에 우연히 들른 선생은 명함을 주고 갔다.
열심히 깎고 다듬으며 한 획 한 획 글씨를 새겨넣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보며 장인의 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얼마 뒤 전화가 왔다.
"배워볼 거냐?"
두말하지 않고 배우겠다고 했다.
엄한 스승님이었다. 1㎜의 오차도 선생은 용납하지 않았다. 무시로 혼났다. 그래도 견뎌냈다. 그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단 한 번도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았다. 준엄한 꾸짖음도 기쁜 마음으로 새겨들었다. 스승은 그에게 부모와 같았다.
스승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101호가 됐다.
지금도 스승의 호된 꾸지람이 그리워진다.
"일을 하며 마지막에 조금 쉽게 만들려고 대충 편법을 쓰면 스승님은 귀신같이 그 허점을 짚어내곤 하셨어요. 그러면 한 달 작업 도로아미타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죠. 그런데 무위로 돌아가곤 했던 그 경험치들이 저에겐 큰 자산이 됐습니다."
참 빈틈 하나 없는 스승이었다.
그런 스승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대를 이어 금속활자 복원에 정진
아들 임규헌, 올해로 서른 하나다. 대견하게도 아버지의 길을 아들도 따라가겠다고 한다.
스승이 그에게 그러했듯, 그 또한 아들에게 엄한 스승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상해선 못 버틴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도 아들이 잘 따라주고 열심히 배우니 흐뭇하다. 아들의 섬세한 성격이 활자를 업으로 삼는 것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의 노력하려는 마음이다.
활자장으로 그는 과거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고 한탄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그저 지나간 것일 뿐이다. 다만 막노동판에서 고된 삶을 살면서도 그는 어느 것 하나 건성으로 하지 않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마음가짐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미장, 형틀목, 조적, 서각 등으로 다져온 그의 삶의 궤적이 활자장으로서 오늘의 삶과 이렇듯 정교하게 겹쳐지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지난 과거의 모든 것이 현재 삶의 긍정적 자양분이 됐다고 그는 믿는다.
2012년~2016년까지 5년 동안 그는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의 활자 복원이 그것이다.
직지 상하 78판의 활자를 복원하는데 글자 수가 무려 3만여 자.
실제로는 10만여 자를 만들었다. 만들다가 마음에 흡족하지 않거나 파자(破字)가 나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10만여 자 가운데 취사 선택을 한 것이 3만여 자인 것이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장인처럼 한 자 한 자 그는 직지를 복원해 나아갔다.
제작한 금속활자가 1년에 2만자. 하루 평균 55자를 만든 셈이다.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 5년 동안 그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최종보고회를 한 뒤 박물관에 납품하고 청주서 연풍집으로 차를 몰고 갔는데, 도무지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 기억이 없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뚝 끊겼던 탓일까, 다음날 후유증이 시작됐다.
"샤워를 하고 한 시간 쯤 잤을까, 깨어나 보니 하체를 움직일 수 없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죠. 불행 중 다행으로 휴대폰을 옆에 두었어요. 가까스로 119를 부르고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고, 열흘 정도 치료를 받고 나니 기적적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완벽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
그가 추구하는 것은 완벽이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완벽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삶의 지향점이다.
직지 금속활자를 복원했던 일도 그렇다. 3만자를 건지기 위해 그는 60% 넘는 7만자의 파자를 감수했다.
왜 그는 금속활자에 집착하는가. 그는 말한다.
"직지라는 형상을 통해 나타난 금속활자는 우리의 자긍심 그 자체입니다."
금속활자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밀랍주조(蜜蠟鑄造)과 주물사주조(鑄物沙鑄造)로 나뉜다.
밀랍주조법은 밀랍에 새긴 밀랍자를 흙으로 싸서 구워 밀랍을 녹여 생긴 공간에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드는 방법으로 글자본 붙이기, 밀랍자 만들기, 밀랍가지 만들기, 주형 만들기, 쇳물 붓기, 활자 다듬기, 조판, 인쇄의 과정을 거친다.
주물사주조법은 나무에 글자를 새겨 어미자를 만들고 주물사에 거푸집을 만들어 그 사이에 쇳물을부어 활자를 만드는 방법으로 글자본 붙이기, 어미자 만들기, 거푸집 만들기, 거푸집 위·아래틀 결합, 쇳물 붓기, 활자 다듬기, 조판, 인쇄의 공정을 거친다.
그가 전수관에서 일반인들에게 시연하는 것은 주로 주물사주조법이다.
한 자 한 자 피와 땀을 쏟아내며 각인하는 활자는 그의 마음 속에 새겨 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가 성실하게 또 하나의 하루를 열고 있는 모습들이다.
/글=김명기 편집인·사진=이나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