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예올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어떤 부인이 음식은 먹지 않고 항상 성내고 욕하기를 즐겨 하여 사람만 보면 죽일 듯이 달려들어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명의가 부인을 진료한 후 광대 두 명을 시켜 부인을 크게 웃게 하였더니 점차 병증이 치료되었다. 칠정(七情)의 상생상극 원리를 이용하여 광증을 치료한 ‘동의보감’에 등재된 오래된 의안(醫案)이다.

마음이 관건이다. 칠정은 모두 장부를 상하게 한다. 기쁨은 심장을 상하고, 성냄은 간을 상하고, 근심은 폐를 상하고, 생각은 비위를 상하고, 슬픔은 심포를 상하고, 무서움은 신장을 상하고, 놀람은 담을 상한다. 웃음은 건강에 좋다 하여 수시로 웃는 것을 권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자주 웃으면 기운을 이완시키고 심장을 상하게 한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화가 극심하므로 사람들은 매 순간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칠정이 동하기 쉽다. 이에 우울증 불면증 등 가벼운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장부 실조로 인해 발병하는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종양 질환의 수위를 다투는 갑상선 종양은 대부분 칠정이 동하여 발병하며 그 외 종양들도 상당 부분 칠정으로 인해 발병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질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 건강 지키기의 기본은 마음 다스리기이다.

칠정이 애초 동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칠정이 동하면 바로 마음을 다스려 절제하는 것을 화(和)라 하여 중용에서는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 중용은 인격 도야에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을 일러준다. 한의학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무(無)와 징심(澄心)을 강조하며 허(虛)를 기르도록 권한다. 마음 비우기이다.

마음 비우기가 건강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관건임을 이해하더라도 이를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다. 정신수양 혹은 마음공부는 가장 어려운 분야이다. 불확실한 미래, 일상의 복잡다단, 사람과의 관계 또는 다양한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가정도 이루지 않고 일평생 매섭게 정진하는 수도자조차도 칠정으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성인들의 일생을 살펴보아도 칠정으로부터 자유롭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마음 비우기는 사막의 신기루인가?

인간은 사물이나 일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면 마음 비우기와 유사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사업이나 공부 때문에 건강을 잃는 사람도 많지만 오히려 사업이나 공부에 몰두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이들도 있다. 온 힘을 다하여 집중하면 마음이 비워지게 되며, 성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를 충족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취미를 기르는 것이다.

취미는 매일 한두 시간씩 손쉽게 즐겨 할 수 있는 것으로 택한다. 평소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동적인 취미가 좋고, 신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정적인 취미가 좋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힘들더라도 꾸준히 몇 년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삶을 풍성하게 하고 본업과 시너지효과를 내기도 한다. 링컨이 극심한 안팎의 스트레스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은 셰익스피어 작품이었고, 공자가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즉 육예를 군자의 덕목으로 언급한 것도 마음 비우기와 연관이 있다.

삶을 관조하여 마음공부를 틈틈이 하고 더불어 취미 생활을 영위한다면 칠정이 일으키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유한한 삶이기에 보다 건강한 상태에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질병이 깊으면 마음공부와 취미만으로 칠정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는 침 뜸 한약으로 질병을 다스리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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