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명 시인.
▲ ▲정진명 시인.

우리 겨레는 사농공상이라는 4계급을 오랜 세월, 적어도 1000년 가까이 겪어왔습니다. 그래서 4단계에 걸치는 존댓말(해라체, 하게체, 하오체, 합쇼체.)이 발달해왔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다 사라져서 어른에 대한 예절 정도로 남아있죠. 그래서 학교에서도 그에 대한 기본 용어 정도는 가르쳐줍니다. 예컨대 어른들에게만 쓰는 예절 용어가 있습니다.

‘술’은 보통 쓰는 말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쓰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는 특별히 ‘약주’라고 합니다. ‘술’이 잘못이 아니라, 어른에게만 대접해주려는 특수한 용어입니다. ‘집’은 ‘댁’이라고 하고, ‘나이’는 ‘춘추’나 ‘연세’라고 하며, ‘밥’은 ‘진지’라고 합니다.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쓰는 존댓말이 ‘약주’라고 한다고 하여, ‘술’이 그와 반대로 낮춤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주’가 특수성을 지닌 말입니다.

만약에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컨대 친구 둘이 만나서 술을 먹는데,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야, 약주 한잔해.”라고 한다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대번에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나올 겁니다. 친구에게는 그냥 “술 한잔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손아랫사람에게도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해서 술이 낮춤말은 아닙니다. ‘이빨’이 바로 그런 말입니다.(『청소년을 위한 우리 철학 이야기』)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87세이신 우리 어머니 평강 채 씨에게 이빨에 대해서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러십니다.

“옛날에는 어른한테 이빨이라는 말 안 썼어. 치아에 뭐 묻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했지.”

이제사 답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치아’는 옛날에 어른들 대접용으로 쓰던 말이었던 것입니다. ‘약주, 댁, 연세’ 같은 말이죠. 그런데 이런 말을 자신에게 쓰면 될까요?

애들한테 “치아 닦아야지.”라고 하는 말은, “약주 마시자.”, “네 댁이 어디니?”라는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잘못된 표현입니다. 세상에 이런 개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애한테 약주라니!

‘이빨’은 ‘이+ㅅ+발’의 짜임입니다. ㅅ은 사이시옷이고, ‘발’은 길게 드리운 것을 말합니다. 중국집 문에 드리운 발이 그것입니다. 주렴이라는 것이죠. ‘글월’의 옛말은 ‘글발’이었습니다. 우리는 옛날에 세로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 글씨들이 마치 발처럼 드리워져서 ‘글발’이라고 한 것입니다.

‘서릿발’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이 추우면 땅이 얼고, 언 땅 밑에는 얼음기둥이 조로록 서서 겉흙을 밀어올립니다. 그런 것을 서릿발이라고 하죠. 이걸 보면 ‘발’이란 똑같은 것이 나란히 선 모양을 가리키는 우리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에 ‘발’이 붙은 것인지 대번에 알겠네요. 이는 혼자서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다른 여러 이와 나란히 서있습니다. 그렇게 나란히 선 것을 ‘잇발’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세상이 어느 민족이 있어 이가 나란히 선 모양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빨은, 제가 보기에, 우리 말 표현력의 본때를 보여주는 말입니다.(『온깍지 활 공부』) 이런 말을 강남의 어리석은 부자들과 그런 자들에게 부화뇌동하는 놈들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오용을 하고, 그것을 한글학자라는 놈들이 뒤따라가며 합리화해주는 이 어이없는 작태를, 아무런 힘도 없는 저 같은 백성은 어찌 바라봐야 할까요? 이 글을 쓰면서도 분통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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