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어떤 작품은 당시에는 무심히 지나친 것 같아도 기억 한 켠에 각인되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경우들이 있다. 예전에 중학교 국어 시간인가 읽었던 김동인(1900-1951)의 단편소설 '광화사狂畵師'(1935)도 그 중 하나다.
작품의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유독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먹물이 튀어 찍은 초상화의 눈동자만은 강렬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초상화 눈동자 이미지에 이끌려 소설도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작품은 작가인 화자 여余가 인왕산을 소요하며 구상해나가는 한 화가의 이야기를 담은 액자소설이다. 조선 세종 때 추한 외모로 아내들이 떠나버리자 세상을 등진 채 그림에만 몰두하던 화공 솔거는 자신의 아내로 여기며 오래 그려왔던 미녀상을 완성하기 위해 ‘색채 다른 표정’의 미인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그는 한 소경처녀에게서 이상적인 미를 발견하고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완성해간다. 어둠 때문에 마지막 남은 눈동자만 다음날 완성하기로 한 솔거는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다음날 그녀에게서 더 이상 원래의 눈빛을 볼 수 없자 화가는 소녀의 멱살을 쥐고 흔들다 그녀가 죽게 된다. 소녀의 몸에 부딪친 벼루에서 튄 먹물이 초상화의 눈동자에 찍히며 원망서린 눈빛이 담긴 초상화가 완성된다.
이후 실성한 화공은 화상을 품고 떠돌다 눈밭에서 죽는다. 이 작품은 예술에 도덕적 교훈이나 윤리적 가치를 담기보다 예술의 절대성을 지향하는 탐미주의 경향의 작품으로서, 소경 처녀의 죽음과 맞바꾸어진 초상화의 눈동자는 이미지와 실재의 모순적 관계를 상기시키는 미학적 장치로 볼 수 있다.
내 사그라져가는 기억의 마모를 버티며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튄 먹물이 우연인 듯 찍은 눈동자는 무엇일까? 벼루에서 튄 먹물은 솔거가 오랫동안 꿈꾸며 그려왔던 이상적인 미녀상에서 유일하게 미완으로 남아 있던 눈동자를 찍으며 작품을 마무리하는 초상화의 마침표다. 하지만 이 작은 한 점 눈동자에는 마침표 이상의 신비로운 힘이 담겨 있다.
여는 자신이 구상하는 이야기 속 화공에게 신라시대 화성 솔거의 이름을 붙여준다. 현재 남아 있는 솔거의 그림은 없지만 그가 그린 노송도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여 새들이 진짜 노송인 줄 알고 착각하여 날아들다 벽에 부딪쳤다는 기록과 이야기가 전해온다.
화자가 구상해낸 화공 솔거도 평생 완벽한 미의 이상으로서의 초상화를 추구해왔다. 그가 추구한 것은 생명이 고스란히 담긴 초상화, 일반적인 그림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절대초상화다. 그런 점에서 먹물이 튀어 찍은 한 점은 현실을 그럴듯하게 재현한 그림에서 생명이 담긴 절대 초상화로 존재적인 변화를 실현하는 크리티컬 메스(임계점)로서의 하나의 더함이다.
솔거의 초상화 속 눈동자는 ‘수형기(水衡記)’에 나오는 화룡점정畵龍點睛 고사에서 남조 양나라 화가 장승요가 금릉 안락사에 그린 벽화 속 용에 찍은 눈동자에 상응한다. 화룡점정은 어떤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비유로 사용되는데, 원래 화룡점정에는 물리적인 마무리로서의 완성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장승요가 벽화에서 유일하게 미완으로 비워둔 용의 눈동자는 단순한 한 획을 넘어 그려진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역동적 매개로서의 획이다. 솔거의 초상화 속 한 점 눈동자 또한 초상화 눈빛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그림을 삶에 잇대는 신비로운 격동으로서의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