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두 살 터울 손주끼리 다투다 / 어미 눈에 딱 걸렸다. / “누가 잘못한 겨? / 형아, 아니 동생이… /다시 한 번 묻겠어. / 누가 혼날까? / 저요. 아니 전 대요” / 그렁그렁 달린 눈물을 닦아주며 형아가 더 크게 운다. / 아이만도 못한 어른들의 말솜씨를 질타한 필자의 동시 ‘용서 연습 중’이다. "임명권자로부터 그리도 신임을 두텁게 받아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장까지 되셨다며 은혜를 모르는가. 그 의중을 잘 헤아려 눈치껏 수사를 했으면 이리 역적 취급을 받지 않으셨을 걸 지난 정권 때도 그리 정권 눈치 살피지 않고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하다가 여러 고초를 겪었으면서 또다시 그 어려운 길을 가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 (某)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할 때, 현직 검사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현 대통령 당선자)에 올렸던 글이다. ‘의중을 잘 헤아려 눈치껏…’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 표현하고자 하는 뜻과 다른 반의어를 썼다는게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후안무치’ 수준

실존주의 대표자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를 가리켜 ‘존재의 집’이라 했다. 말하지 않고 온전한 인간을 가능케 할까. 겨우 입 떼기 시작한 유아들도 요상한 말로 부모를 놀래 킨다. 청소년 신조어·은어는 기성세대에겐 외계어와 다름없지만 쉽사리 끼어들지 못하는 어른들, 간섭 했다간 오히려 면박·위협에 무방비인 걸 어쩌랴.

몇 년 전, 청주 동남지역 일대가 수해로 난리일 때 하필 해외연수가 타킷 된 충북도의원 입에서 얼핏 ‘레밍(lemming : 쥣과의 포유류)’ 등 시민 비하발언을 섞다 혼쭐났다. 학교급식종사자 파업 관련 “미친X들”오만한 국회의원도 묵사발 됐었다. 모 제약회사 회장 역시 “주둥아리 닥쳐. 애비가 뭐하는 놈인데” 운전기사에게 패륜적 극언을 퍼붓다 된똥 쌌잖은가.

막말 진원지는 대부분 정치권을 거치면서 불량 의심이 짙다. 자기들 끼리 ‘도둑놈, 사이코패스, 실성한 사람’ 으로 빈정댄다. 대선판까지 “돌림 빡 하듯, 소 잡는 칼, 잡아넣겠다”며 언어 테러를 일삼았잖은가. 더 큰 문제는 가족 방송프로그램에서 조차 패널 이랍시고 둘러앉아 느물거리고 낄낄 댄다. 패널티는커녕 겹치기 출연으로 오염을 부추겨 시청자 권익의 박탈감이 크다.

◇공복(公僕)의 경쟁력

절묘한 언술, 전문가들은 ‘청소년기 가정교육과 공교육의 일그러진 결과’로 집약한다. 가끔 양념 수준 엇나간 말조차 쌓이는 화를 왜 모르랴. ‘관계 언어=온도 언어’다. 긍정적인 인간관계 역시 그렇다. 입담을 자신하면 말은 옥타브만 올라간다.

증자(曾子)는 논어에서 “말씨에 주의하면 실수를 피할 수 있다” 했다. 특히 공직자가 분신처럼 챙겨야 할 덕목이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하고 싶어도 때가 아니면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선동질로 죽을 쑨다. 공복(公僕)의 경쟁력은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선별작업부터다. 일단 부정적 이미지를 중립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말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마구 쏟아낸 달변達辯)보다 조금 서툴러 더듬거릴지언정 쿠션 있는 눌변(訥辯)이 훨씬 따뜻한 이유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