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 가며 내 몸의 세포 중 일부는 조금씩 퇴화하는 것 같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 중에 유독 세월이 가면서 퇴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섬세하고 힘차게 자라고 있는 것이 직감이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불쑥 나타나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직감은 내게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가끔은 불현듯, 가끔은 스멀스멀 다가오는 직감이 반갑기 보다는 두려운 적이 더 많았다. 내게 좋은 일 보다는 아픈 일로 더 가까이 다가온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직감은 바람처럼 슬며시 내게 다가온다.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는 가족들이 묻혀 온 바람에서 사춘기 아이가 엄마 몰래 부렸을 객기, 혼자 좋아하는 남자 친구의 뒷덜미를 바라보고 온 큰 아이의 쓸쓸함, 눅눅하고 비릿한 땀 냄새와 섞인 불규칙한 숨결을 주머니에 넣고 거실에서 웅숭그리고 자는 그이의 굽은 등에 달라붙은 무거운 짊. 집안에는 그렇게 서로 다른 바람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제 영역을 만들어 가곤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 옆 조그만 텃밭을 그만 묵정밭을 만들고 말았다. 평소 도종환 시인을 좋아했던 나는 "접시꽃 당신"에 등장하는 묵정밭에 맥없이 가슴이 저려 오곤 했었다. 그렇게 묵정밭은 내 감성을 자극하는 환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내 묵정밭은 게으름을 감출 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나무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묵정밭에 눈길을 주었다. 묵정밭에 가득 핀 하얀 개망초 꽃이 환하게 웃는 모습처럼 보였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망초 대의 웃음소리가 쫘르르 미끄러지는 듯 했다. 어디든 너무 흔하게 핀 망초꽃이 그렇게 풍요롭게 보일 수 가 없었다. 볼썽사납던 묵정밭이 개망초를 품은 모습에서 나는 아직 보지 못했던 바람 같은 인연을 보았다.

묵정밭에 개망초라, 그들은 서로 무엇을 필요로 했고 무엇을 주고받았을까?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나는 그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들은 여름내 그렇게 짝이 되어 비, 바람, 땡볕을 같이 맞으며 살 비비고 살 것이다.

인연이란 주면 받고, 얽히면 풀고, 얻으면 잃기도 하는 그런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짜여진 거라고 믿고 살아왔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인연이란 심은 대로 나는 콩도 팥도 아닌 것 같았고, 꽃 지면 씨앗 드는 그런 사이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주고받을 것이 있어 서로 기다리는 사이인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도 서로 어우러져 부대끼는 그런 사이가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동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다. 그들이 나를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생에는 절대로 여자로 태어나지 않겠다던가, 공부를 하는 스님이 되고 싶다든가, 하는 비겁한 도망자가 되곤 했었다. 그러나 묵정밭을 보면서 나는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내게 왜 무언가 주지 않는가? 하며 투정을 부리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더라면 나도 하얗게 핀 망초 대처럼 편안한 웃음을 달고 살았을 것이다.

누가 내게, 당신은 다음 생에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바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큰 나무라고 더 많은 바람을 주지 않고, 아주 작은 들꽃이라고 해서 적은 바람을 주지 않으며, 높은 곳이나 낮은 곳, 음지나 양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희망도 한낱 욕심에 일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오늘따라 묵정밭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개망초가 더 여유로워 보인다.




/권영이 증평군청 기획감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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