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봄이다! 꽃의 계절이다! 지금은 연분홍의 시절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요 며칠 사이에 기온은 초여름을 일찍 불러낸 느낌이다. 그래도 봄은 봄이니 조만간 기온은 봄철의 기온으로 돌아간다 한다. 어찌되었든 금수강산은 꽃의 시절이다!
지나는 풍경마다 시간이 지나면 스러질 꽃들을 영상물로 간직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만든다.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바램이다. 영상물은 우리의 기억의 편련을 차곡차곡 쌓는다. 전자기기를 이용하여 기록된 영상물은 안타깝게도 보았던 그 빛깔이 아니다. 황홀하게 지워져가는 저녁노을의 사진이 배반의 기억만을 남기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영상물은 현장감을 잃는다. 아무리 영상매체가 발달해도 자연의 빛을 품지는 못하는가 보다.
기억의 조각일지라도 사진 속 꽃들이 웃고 있다. 사진 속 꽃들이 큰 소리로 들리지 않는 웃음을 웃고 있다. 그렇게 영상에 가두어진 느낌들은 더 이상 사진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속의 꽃들은 소리 없는 웃음을 웃기만 한다. 그래서 사진 속의 울음이나 웃음은 사진 밖의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무심천 천변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막 피어나는 꽃송이들도 있고 이미 땅에 떨어져 바람에 날리며 땅에 뒹구는 연분홍 꽃잎들도 있다. 사람들의 눈길은 땅 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길은 늘 아직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는 꽃들에 머물러 있다. 가느다란 가지에 머물고 있는 꽃들에게만 한없이 사랑스런 눈길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렇게 수 없이 많은 꽃말들로 아쉬운 마음을 사진 속으로 밀어 넣는다. 땅 위에는 분홍색 핏빛으로 꽃들이 너부러져 있고, 사람들은 무심히 그 꽃들을 밟고 지나간다. 그들은 정녕 꽃길만 걷고 있다. 꽃잎들이 아프다.
꽃나무 가지에 머물렀던 바람이 잔가지에 작은 흔들림을 남기고 휘익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 바람은 살짝 삐쳐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다보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바람은 나뭇가지에 더 머무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람이 소리 없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그때서야 사람들이 발길을 멈춘다. 바람의 존재를 인지해서 멈춘 것이 아니다. 발길이 느려지고 멈추어진 것은 바람에게 지나가라고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저 바람의 몸에 묻어져 지나가는 꽃향기를 감지한 것뿐 이다. 바람이 지나간 길에는 바람의 옷깃에서 떨어져나간 향기들이 잠시 머무른다. 그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 바람은 벌써 강둑을 지나 건물사이로 접어든다. 이제 바람의 옷깃에는 더 이상 꽃향기기 묻어있지 않다.
사진 속의 꽃들은 향기가 없다. 그 향기는 바람의 옷자락에 묻어서 떠나버렸다. 그래서 바람이 머물러 있지 않은 사진에는 냄새가 없다. 순간을 찍은 사진이나 여러 장으로 찍어서 움직임을 재생산해낸 동영상이나 냄새가 없다. 그 이유는 바람을 찍을 수 없어서 바람을 사진 속에 가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멈추어진 곳에는 냄새도 움직임도 없다. 그 지워진 시간은 우리 기억 속에 깊이 묻어져 있다. 가끔 그 깊은 곳으로부터 퍼 올린 추억의 두레박 속에나 조금 남겨져 있을 수가 있겠다.
기록의 관점에서 사진은 인류에게 대단한 공헌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보고 배운 기록들이 진정한 역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실이야 어찌되었든, 사진은 카메라의 렌즈 안의 사실만 편련으로 샘플 된 기록을 전달한다. 그 기록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냄새가 없다. 기록의 글귀는 그저 피상적인 형태이어서, 또 다른 하나의 왜곡을 생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록된 역사 속에는 전쟁터에는 피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꽃들이 자신의 향기를 사진 속에 머물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영원이라는 시간을 찰나에도 가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삶은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그 자체의 빛깔과 향기에 있다고도 한다. 기록된 기억들은 사실에 영원히 불완전한 존재일 수도 있다. 향기 가득한 이 꽃길을 지나 인간시장의 골목을 지나가는 바람이 우리를 바라다보고 씩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진 사실의 조각들을 왜곡된 형태로 바라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 속의 꽃들은 그저 웃고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