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를 대표하는 가문은 청주 한씨입니다. 그런데 청주 한씨를 ‘대머리 한씨’라고 부릅니다. 한씨 시조가 살던 곳이 대머리라는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대머리’라는 이름은 그곳에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무심천이 가로지르는 너른 들(분평, 미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대머리입니다. 지금은 무농정(務農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바로 옆에 용지(龍池)와 한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 대머리는 대가리가 까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머리’는 ‘산마루’에서 보이는 ‘마루’입니다. 높다는 뜻이죠. 그 높이는 얼마 안 됩니다. 얼마 전에 20 몇 층짜리 아파트가 그 앞에 들어섰는데, 그보다도 더 낮습니다. 그런데 드넓게 펼쳐진 들판 옆에 슬그머니 솟아서 그 근처에서는 가장 높기에 높다는 뜻이 붙은 것입니다. ‘대’는 ‘꼭대기’라는 말에도 보입니다. 이것도 언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 대머리는 높은 산등성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머리 옆에는 ‘작은 대머리’가 있습니다. 동네 이름인데, 지금은 버스정류장 이름이 되었습니다. 시가지로 개발되기 전에는 이 근방이 전부 과수원이었습니다.
이 ‘대머리’는 ‘원마루’와 ‘원봉(元峰)’으로도 나타납니다. ‘대머리’와 비교하면 ‘원’은 ‘대’이고, ‘마루, 머리’는 ‘봉’이 된 것이죠. 아마도 산이 볼록하게 솟아서 붙은 이름일 겁니다. 그 근처에서 으뜸(元)인 봉우리(峰, 마루)죠.
분평동과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 미평(米坪)입니다. 쌀 미 자를 썼지만, 쌀의 뜻이 아니고 ‘미’는 우리말에서 물이나 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계백장군이 마지막 전투를 치른 곳이 황산(黃山)인데, 노란 산이라는 뜻이 아니라 ‘넓은 들’이라는 뜻입니다. ‘황’이 크다는 뜻으로 쓰인 말에는 ‘황새, 황소’가 있죠. 이 짐승들이 노라서 붙은 이름이 아니고, ‘한’의 변형이 ‘황’이 된 것입니다. 고구려어로 ‘미’는 들이고, ‘뫼’는 산입니다. 원래는 ‘놀미’인데, 이것을 ‘놀뫼’로 착각하고 ‘황산’으로 번역한 것이죠. 놀미가 어디인가요? ‘논산(論山)’입니다. ‘놀미, 너르미, 넓미’의 소리를 한자로 적은 게 ‘논산’이고, 실제로 논산 사람들은 그곳을 ‘놀미’라고 부릅니다. 평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평의 ‘미(米)’도 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미평은 쌀이 많이 나는 곳이 아니라 넓은 들이라는 뜻입니다. 평(坪)에 이미 들이라는 뜻이 있으니, ‘미’를 들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면 ‘강’을 뜻하는 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미리내’가 은하수이고, ‘미리’가 용이니, 무심천을 용가리로 표현한 ‘분평’과도 비슷한 말이 되죠. 분평이나 미평이나 모두 개울을 용으로 표현한 말이 되겠습니다.
육거리 시장 옆 개울에 땅속 깊이 묻힌 돌다리가 있어, 그것을 번역한 이름이 ‘석교동’입니다. 그런데 돌다리라고 하지 않고, ‘꽃다리’고 부릅니다. 꽃다리는 이름은 아름다운데, 실제로는 우시장이 있던 곳이고, 소를 사고파는 많은 돈이 오가는 곳이기에 그들을 상대로 한 주막이 번성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주막이 있으면 반드시 웃음이 헤픈 여인들이 있죠. ‘꽃다리’의 ‘꽃’은 의인법으로 ‘여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단양군 수양개 맞은편에 ‘꽃거리’가 있습니다. 옛날에 영월까지 배가 올라갔는데, 거기서 뗏목을 만들어서 마포까지 나무를 날랐습니다. 뗏목꾼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바로 ‘꽃거리’입니다. 당연히 주막이 있고, 여인인 ‘꽃’이 있기에, 이름이 이렇게 붙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