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에 관해 말하다 보면,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 가끔 눈에 띕니다. 지명에는 천 년 내력이 있는 법인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바꿔버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바꾸었다는 기록조차도 남기지 않습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지나가죠. 20~30년쯤 세월이 지나고 보면 마치 그 지명이 100년 전부터 있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불립니다. 산의 경우 요즘은 꼭대기에다가 커다란 돌덩어리를 세우고 이름을 새겨넣어 부정확한 고증이더라도 정과 끌로 그것을 ‘확정’짓는 일을 실천합니다.

공군사관학교가 1985년에 서울에서 느닷없이 청주 시내로 이사 옵니다. 그러더니 그 학교 뒤쪽에 있는 봉우리 하나에 뜬금없는 이름이 붙습니다. ‘성무봉’. 공사의 터 이름인 ‘성무대’를 본뜬 이름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죠. 공군은 성무대, 육군은 계룡대. 관청의 거대 권력이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지도를 비롯하여 모든 관제 서류에 ‘성무봉’이 자리 잡습니다. 사람들은 덩달아서 그렇게 부르죠. 이름까지 이사 온 것입니다.

그 봉우리 밑의 골짜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도 그 산의 본래 이름을 잘 모릅니다. 그 앞쪽에는 조금 더 야트막한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것의 이름은 다들 잘 압니다. ‘시루봉’이랍니다. 쌍수리 역촌 쪽에서 볼 때 마치 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모습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그 산 너머에는 가덕면 은행리가 있는데, 은행리 사람들이 청주 장을 보러 올 때 이 시루봉 앞쪽 골짜기를 넘어서 다녔습니다. 그래서 토박이들은 시루봉을 잘 기억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시루봉 뒤에 곰처럼 웅크린 더 큰 산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을 사람들이 모르는 현상이 하도 이상해서 그 지역 토박이 몇 분에게 도대체 저 산의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산의 동쪽 기슭 은행리에 사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봉우리 바로 뒤에 천년 고찰 왕암사가 있으니, 왕암산이겠지!”

왕암사에는 세조와 관련한 민간어원설이 있습니다. 세조가 보은으로 가기 위하여 백족산 부근을 지나 피반령을 넘다 바라본 성무봉의 바위가 멋지다는 말을 남기자 왕이 말한 바위라는 뜻의 왕암사라는 이름을 얻었다(중부매일)고 하는 전설입니다.

설마 세조가 1980년대에 붙은 ‘성무봉’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여기에 ‘왕암’의 뜻을 볼 수 있는 실마리가 있는데, 왕바위(王巖)라는 뜻이겠지요. 큰 바위라는 뜻입니다. ‘바위’는 고구려어에서 마을을 뜻합니다. 그러니 왕암은 큰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바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산의 형상으로 보건대 흙산이어서 봉우리를 드러낼 만한 큰 바위를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희한한 건 산꼭대기에서도 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서 절이 들어서고, 그 물을 젖줄 삼아서 종교가 천년을 이어갑니다. 왕암사는 왕암산의 주인 자격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뺏긴 이름이 왕암사에 깃들만합니다. 일단 이렇게 정리하고, 훌륭한 분들의 연구를 기다립니다. ‘성무봉’에 내쫓긴 원래 이름이 제대로 드러나, 올바른 대접 받기를 기대합니다. 그나저나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이미 사라진 산 이름에 대해서, 저 같은 ‘뜨내기’가 주절주절 떠는 것도 참 웃기는 일입니다. 임자 잃은 말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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