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사관학교 입구 옆 쌍수리에는 체육공원이 있습니다. 서울에 있던 공사가 내려오면서 원래 있던 마을이 통째로 이사 갔고, 지금은 체육공원이 되었습니다. 공사 이전으로 철거되기 전의 그 동네 이름이 ‘역촌’이었습니다. 공원 한복판에 커다란 둥구나무가 몇 그루 서서 그곳이 마을이 있던 터였음을 보여줍니다. 큰길의 효촌리에는 ‘관터’라는 지명이 있으니, 이 둘을 보면 옛날에 조선 시대에는 이곳이 역마를 관리하는 곳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청주에서 공군사관학교 앞을 지나 조금만 나가면 삼거리입니다. ‘거리’는 한자로 ‘距離’라고 쓰는데, 어림없는 일입니다. ‘갈래’와 같은 뿌리에서 온 말입니다. 갈라진 곳이라는 뜻이죠. 오른쪽으로 가면 문의이고, 왼쪽으로 가면 미원과 보은입니다. 이곳에는 제가 늘 감탄하는 아름다운 마을 이름이 있습니다. ‘아래고분터’. ‘고분’ 때문에 무덤을 연상하기 쉬운데, 구부러졌다는 뜻입니다. 밀려난 산줄기 때문에 길이 구부러졌고, 구부러진 그 안쪽에 가만히 자리 잡은 동네이기에 이름이 ‘아래고분터’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당연히 그 위쪽에는 ‘윗고분터’가 있지요. 이 동네 행정지명이 ‘고은리’입니다. ‘곱은’의 비읍(ㅂ)이 순경음화(ㅸ)를 거쳐서 모음으로 변화된 발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면서기의 펜 끝에서 그대로 한자음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미원과 문의를 잇는 큰 길이 고은리 앞을 지나고, 고은리 건너편에 시인 장문석을 낳은 마을 ‘버들고지’가 있습니다. 이름이 참 아름답습니다. 언뜻 보면 버들꽃이 가득 핀 마을이 연상되는데, 실은 꽃과는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고지’는 2가지 뜻이 있습니다.

먼저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형의 뜻이 있는데, 바다로 튀어나간 뾰족한 육지를 ‘곶’이라고 하고, 활의 끄트머리를 ‘고자’라고 합니다. ‘버들’은 버드나무를 뜻하는 게 아니라 길게 뻗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버들고지를 이 뜻으로 풀이하면 산줄기가 길게 뻗어나간 곳에 있는 동네라는 뜻이 됩니다.

두 번째 뜻은 우묵한 골짜기입니다. ‘고지’는 ‘구지’와 같은 말인데, ‘곧, 굳’은 구멍이나 땅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에 따르면 ‘버들고지’는 길게 뻗은 골짜기를 뜻합니다. 그런 골짜기 안에 깃든 동네를 버들고지라고 한 셈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말씨로 이루어진 마을에서 시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일 겁니다.

아래고분터는 왕암산에서 길게 흘러내려온 산줄기가 마지막 손을 뻗어 오그린 손바닥 안쪽 자리에 들어선 마을입니다. 그 뒷산은 무심천 양쪽으로 크게 펼쳐진 들을 건너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산의 나무를 베어내고 등성이를 깎아서 그 뒤편 비탈에 전원주택 단지를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큰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제 나이 환갑을 넘기니, 겨울철에 머리를 깎으면 뒤통수가 썰렁해져서 저절로 목도리를 둘러 귀밑까지 덮게 됩니다. 뒤통수를 깎인 이 마을에도 목도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하며 그 아름다운 이름 앞으로 지나갑니다. 쌍수, 관터, 신송, 화당, 것대산, 낙가산, 월오리, 자리미기, 음짓말, 두산 같은 말들이 나 좀 봐달라고 막 쫓아오지만, 나는 모르는 체합니다.

“나 바빠! 딴 데 가서 알아봐. 교수님들 그득한데, 나한테 지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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