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바로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가 그 끝을 알 수가 없이 길어지고 있다.

처음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시간이 많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는 벌써 2년이 넘었고, 교회 새벽기도 반주를 시작한지도 어느새 1년이 훨씬 지나갔다. 지금도 반주는 썩 잘 하진 못하지만 떨지 않고 할 수 있으니 참 잘했지 싶다.

피아노연습에 여유가 생기고 나니 또 다른 것에 도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 있는 캘리그라피 공방이 눈에 들어왔다. 예쁜 글씨와 그림의 유혹에 빠져 그날부터 글씨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몰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필자는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그려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아주 생각이 안 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떨리기 마련이다. 

글씨 기초가 되는 줄긋기, 원 그리기 등을 시작으로 예쁜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다. 교본 보고 쓰기 시작한 글씨가 점점 좋아지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공방에 오는 것이 행복했고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기초과정을 배우고 중급을 거쳐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배운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기대와 떨림의 연속이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시작하지만 작품이 만들어질 때마다 안도와 성취감이 밀려온다. 

여러 과정을 배우면서 그림에 문외한인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글씨 연습을 많이 하고 실전에 들어가지만, 실수 하지 않고 작품이 하나하나 만들어 질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 거기다 선생님의 잘했다는 말 한마디는 자신감이 솟기에 충분하다. 

작품과정에 팝아트라는 게 있는데 사진을 가지고 그리는 것이다. 두 개까지 가능하다 하여 큰 손자를 빼고 어린 손주 둘을 그렸다. 머리카락 하나까지 온갖 정성을 들여 그렸다. 사진을 확대한 얼굴에 명암을 넣어 색칠한 모습은 너무 사랑스럽다. 작품을 현관 벽에 걸어 놓으니 집에 들어올 때마다 손자들이 '할머니' 하고 반겨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벽에 걸어놓은 손자들의 사진을 자랑하기 위해 딸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런데 딸은 큰손자가 할머니 집에 올 때는 그림을 떼어놓으란다. 샘 많은 큰손자가 자기그림이 없으면 속상해 한단다. 거기까지 생각 못했는데 그런 생각 까지 한 딸은 역시 엄마다. 사진을 걸었다 떼었다 할 수는 없잖은가. 하여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큰 손자 그림까지 세장의 그림을 걸어 놓았다.

이제야 완전한 그림이 된 것 같다. 보고 또 봐도 좋다. 아이들은 언제 보아도 날개 없는 천사다. 현관 앞 갤러리에 작품 하나하나 걸릴 때마다 뿌듯하다.

캘리를 배우면서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가 중학교 때 학교현관에 '하면 된다' 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되면 한단다. 그때는 한 우물만 파랬는데 요즘은 그러면 무너진단다. 시대에 따라 생각도 변하나 보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배울 수 있어 감사하고 성취감까지 맛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 예쁜 글씨와 그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순 없지만, 몰입의 기쁨을 오래 맛보고 싶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