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한국은 3월에 학기가 시작해서 연말에 한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다면 프랑스에서는 9월에 학년이 시작해서 6월 말에 끝난다. 학회들도 1년 동안 소규모 세미나들을 해오다가 학년 말 즈음에 한 해 동안의 학문 교류를 마무리하는 전체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경우들이 많다.
필자는 이번 파리 7대학 텍스트-이미지센터(CEEI)와 국립예술사연구소(INHA), 동아시아연구프랑스학회(IFRAE)가 공동주관하는 국제 콜로키움에 참여하게 되었다. 작년 국제 콜로키움에서 'Le blanc(흰색)'을 대주제로 삼은 것에 이어 이번 국제 콜로키움에서는 '동아시아 문화에서의 검은색의 사용과 가치'를 대주제로 삼아 검은색에 관한 모든 것들을 성찰해본다. 수묵화와 서예를 공유해온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검은색은 단순한 색상으로서의 검은색에 모든 색상을 포함하기도 하고 모든 색이 비워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고대로부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검은색은 단순한 색상으로서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으며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태초의 근원이자 모든 보이는 현상의 원리와 원천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번 이미지-텍스트 국제 콜로키움은 6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진행되며, 개념 차원에서의 검은색이 지닌 풍부함과 텍스트, 글쓰기, 이미지 혹은 다양한 융합 연구에서 검은색이 제기하는 문제의 다양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회 현장에 와서 또는 원격으로 참여하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인도, 프랑스, 이태리 등 여러 나라 연구자들의 서른 가지 이상의 발표로 구성된 학술대회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아시아 예술과 문화 속에 나타난 검은색의 풍부한 뉘앙스들과 미학적, 형이상학적 가치들에 대해 소개하고 함께 토론한다. 첫째 날은 주로 수묵화와 서예, 목판화와 같은 전통 예술에서의 검은색을 중심으로, 둘째 날은 한, 중, 일의 시, 수필, 소설 등의 문학에 나타난 검은색과 동아시아 현대 예술에서의 검은색을 중심으로, 마지막 날은 오늘날 동아시아와 영화와 사진, 회화와 칠기, 그래픽 아트와 도자기에서의 검은색의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번 동아시아 문화권 콜로키움에서는 한국 예술가들에 대한 여러 발표도 포함된다. 겸재 정선의 검은색과 진경산수화(황주연), 이수지의 동화책에 나타난 검은색의 풍부한 뉘앙스(도윤정), 김동인의 '광화사'에서 먹물이 튀어 완성된 초상화의 눈동자(황혜영), 박대성 작품 속 검은색과 컬러, 서예와 그림의 조화(강여울) 등의 연구가 소개된다.
올해 키워드 '검은색'으로 개최되는 국제 콜로키움 기간 중 8일 하루 동안에는 화가, 서예가, 조형가, 도예가, 사진작가, 그리고 조각가 등 25명의 현재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동아시아의 수묵화 전통의 다양한 미래라는 질문을 공유하며 작품을 전시하고 자신의 작품 주제에 대해 소개하는 행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의 검은색의 미학적 의미와 기호학적 이론, 서예나 그래픽 아트에서의 검은색의 기능이나 용도, 우주의 기원과 빔과 채움과 같은 동양철학적 현상과 원리, 검은색의 언어학적 뉘앙스와 문화적 의미, 문학, 뉴미디어나 디자인, 사진, 영화에서의 검은색을 파헤치는 이번 국제 콜로키움은 검은색의 무궁무진한 가치를 함께 음미해보는 글로벌 연구 교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