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명 시인.
 ▲정진명 시인.

우암산의 어원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없어서 제가 또 쓸데없이 입을 열고야 맙니다. '우암산'은 최근에 쓴 말이고, 1960년대에 청주를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와우산(臥牛山)'이라고 기억합니다. 소가 누운 형상이라는 거죠. 실제로 남쪽인 무심천 상류 쪽에서 바라보면 상당산성에서 뻗어내린 산의 모습이 마치 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풍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형상으로 도시의 성격을 규정지으려고 한 의도가 보이는 말입니다. 풍수는 고려 시대 도선국사가 도입하였으니, 이런 식의 설명은 심심풀이 정도로 붙은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암산은 '소의 산'입니다. 우리말로는 '쇳뫼'죠. 이러면 좀 뭔가 보이시죠?

그러니 '쇠뫼'는 고을의 동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 되죠. 실제로 우암산은 시내에 바짝 붙었는데, 동쪽에 있습니다. 아마도 전국의 소와 관련된 산 이름을 조사하면 거의 다 그 동네의 동쪽에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남으시는 분은 한 번 조사해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와우산은 '소의 산'이라는 뜻이고, 이것이 원래는 방향을 나타내는 말에서 왔으나, 뒤늦게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산의 형상에 생각이 매여 누운 소의 뜻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상관은 없겠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니, 동쪽 산이라고 하나 소를 닮은 산이라고 하나, 뭐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의 뿌리는 정확히 아는 게 좋겠죠. 제가 이런 소리를 신문지에다 대고 지껄이지만, 제 말을 믿어달라고 애걸복걸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렇다고 말하는 것도 자유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도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자유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이제 안터벌로 갑니다. 이곳은 '내덕동(內德洞)'인데, '안터벌, 안덕벌'이라고 해서 같은 곳을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터'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땅을 말하는 것이고, '덕'은 언덕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덕동은 북쪽의 오창 들(머귓벌)을 건너오는 바람이 맞닥뜨리는 청주 초입입니다. 그러니 그 동네 뒤의 야트막한 언덕이 중요해집니다. 겨울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죠. 그런 언덕 때문에 '덕'이 붙은 것이고, 그런 언덕이 감싸 안은 안쪽의 아늑한 터 들판을 '안터'라고 한 것입니다. '안덕'과 '안터'는 기준을 어디에 두고 붙였느냐 하는 차이일 뿐, 같은 지역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안터'가 있으면 '바깥들, 밧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왜 '바깥터'가 아니고 '바깥들'이냐고요? 안쪽은 '터'이고, 바깥은 '들'입니다. '들고양이, 들소, 들개' 같은 말을 보면 '들'이 야생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죠. 그래서 '안터'의 짝말이 '밧들'이 되는 겁니다. 지도를 찾아보니 '외평(外坪)'이 있네요. 말 그대로 '밧들'입니다. 지금의 청주 국제공항 옆 동네입니다. 청주에서 율양동 언덕을 넘어가면 만나는 첫 동네가 외평입니다. 그래서 청주에서 볼 때 바깥쪽이라는 뜻이 붙은 것이죠. '외남'과 '외하'는 외평을 기준으로 생긴 말일 겁니다. 외평의 남쪽은 '외남', 외평의 하류 쪽은 '외하'.

'사천동'의 사천(斜川)은 '빗겨 흐르는 내, 빗내'라는 뜻인데, 금천과 비교하면 재미있습니다. 물길의 방향이 동서로 누운 것은 둘 다 비슷한데, 금천 때문에 다른 말을 찾다 보니 비스듬히 흐르는 내라는 뜻을 붙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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