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일년 열두 달 가운데 기념일이 가장 많은 5월은 한 가정의 가장들에게 '가장 힘에 겨운 달'이 된지 이미 오래다. 어린이 날을 시작으로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날, 부부의 날등 개인적으로 가정을 챙겨야 할 날이 많아 박봉의 직장인 가장들에게는 유난히도 길고, 버거운 달이다.


- 힘에 부치는 5월


40대 가장인 직장인 a씨는 매년 5월이면 머리가 지근거린다. 신문 지면 곳곳을 장식하는 '가정의 달 행사 풍성' 같은 기사나 포털사이트의 '가정의 달 이벤트' 등을 수시로 접하면서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올해는 계속된 징검다리 연휴로 인해 그만큼 더 힘에 부쳤다. 직장을 핑계로 평소 도외시했던 가정에 바짝 신경써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 지출과 함께 많은 시간 할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어린이 날 아이들 용돈과 선물, 외식, 나들이 비용이 만만찮다. 어버이 날에는 친갇처가를 찾고, 선물·식사·용돈 등 부담이 크다. 스승의 날이면 정작 자신의 은사는 생각지도 못하고, 아이들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해마다 이 맘 때쯤 치러지는 동문체육대회도 짐이 아닐 수 없다. 평소 바쁜 직장 관계로 신경을 쓰지 못했어도 일년에 한번인 체육대회에 참석해 그리운 친구들 얼굴이라도 볼라치면 그동안 밀린 동창회비에 참가비 등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면 결혼 기념일도 성큼 다가온다. 다른 날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바짝 신경써야 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인 관계로 아내 눈치부터 살피지만 받을 선물에, 가고 싶은 곳까지 정해 두는 데 피할 방법이 없다. 잠시 한숨을 돌리려는가 싶으면 친·인척이나 주변 사람들의 애·경사도 봇물처럼 터지다보면 어느 덧 지갑은 텅비고, 쌈짓돈까지 털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마이너스 가계부의 후유증은 가정의 달을 훌쩍 넘기고서도 한동안 계속 이어진다.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되랴, 부모님께 효도하랴, 믿음직한 남편하랴…. 챙겨야 할 일도 많고, 지출도 많아 몸과 마음이 바쁘면서 가장들에게 가장 힘에 부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가정의 달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소중한 가정에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행복한 날이 연속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요즘의 실상이다. 오죽하면 기념일에 맞춰 야근하는 직장인들이 늘었다는 소문까지 공공연히 나돌겠는가. 얼마전 모 포털 사이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가운데 8명이 '기념일이 많은 5월이 부담스럽다'는 답변이 가슴에 와 닿는다.


- 가족만큼 든든한 울타리 없어


그렇지만 각박한 사회에서 가족 만큼 든든한 울타리는 없다. 기쁜 일은 배가 되게 하고, 힘든 일은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 가족이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가정이 안정돼야 사회 생활도 희망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문제의 출발과 끝의 원천은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출발하고 끝이 난다. 둥지가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는 '소훼난파(巢毁卵破)'라는 말이 있다. 국가나 사회 또는 조직이나 집단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로 보금자리인 가정이 무너지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아무리 힘에 겨워도 가정의 달을 무심하게 넘길 수는 없다. 올해 5월은 이렇게 보내지만 내년에도, 후년에도 가정의 달은 계속된다. 업보라는 생각은 접자. 어차피 겪어야 할 가정의 달을 보다 계획적이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넘기기 위해 차라리 내년 계획을 지금부터 세워보면 어떨까? 늘 그래왔듯이 올해도 진한 아쉬움을 남긴 채 5월을 보내면서 시나브로 6월을 맞을 준비를 한다.




/김헌섭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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