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는 흉노족이 무제의 역공에 패하여 쫓기게 됩니다. 이들 중에 선우와 좌현왕은 서쪽으로 갔는데, 우현왕이 바로 동쪽으로 몰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왕조를 접수하죠. 국가도 아니고 부족도 아닌 어정쩡한 제도와 형태로 살아가던 고조선 지역에 유목지대를 호령하는 통치체제를 적용하면서 스스로 왕을 잇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고조선의 마지막 왕 우거(右渠)입니다. 중국에게 시달리던 고조선 사람들은 다민족 연합국가에서 전투 경험이 많은 흉노족의 우현왕을 위만조선의 새 왕으로 추대했을 것입니다.
고조선의 왕 우거(右渠)는 성이 '우'이고, 이름이 '거'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죠. 우(右)가 성은 아닐 거라는 말입니다. 고대사 자료에서 오른쪽을 가리키는 언어 자료는 딱 하나입니다. 흉노족의 우현왕이죠. 그러면 그거라도 잡고 늘어져야죠. 그게 역사학 연구 정신 아닌가요? 역사학도들께서는 저를 탓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하.
'거'는 뭘까요? 한자의 뜻은 '도랑'입니다. 부동산 행정용어에 '구거부지'라는 우스꽝스러운 말이 있는데, 거기의 '거'가 바로 그 '渠'입니다. 그러나 이게 역사책에 나온다면 뜻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일단 소리로 읽어야죠. '거'에 해당하는 우리 말 중에서 우두머리와 연관이 있는 말이 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모르겠지만, 국어학 전공자인 저는 압니다. '걸'이 그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말이죠? 윷놀이에 있습니다. '도, 개, 걸, 윷, 모'가 그것이죠. 한가운데에 걸이 있네요. 리을 탈락이 되면 '거'가 됩니다. 이 윷말의 이름들은 부여의 언어이고, 유목의 자취가 강합니다. 그래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것을 부여의 통치제도인 사출도에서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다섯 지역을 담당하는 벼슬 이름인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고 말이죠. 그런데 중앙만 이름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 사출도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다른 이름이 필요 없죠. 곧 왕이죠. 왕은 자기 이름이 없습니다. 하늘이자 땅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이 왕이 각기 짐승으로 벼슬 이름을 삼은 셈이죠.
그렇다면 중앙을 나타내는 '걸'은 짐승 이름일까요? 사람들은 이것을 '양'으로 비정합니다. 다른 말이 모두 짐승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말로 양은 '염'이라고 하여, 따로 분류합니다. 이 '염'을 닮은 소가 '염소'입니다. '염'은 양의 목소리를 글로 베낀 말이고, 그렇게 우는 소라는 뜻이죠. 실제 양과 염소는 '여어어어어엄!'하고 웁니다. 하하하.
만약에 사출도가 윷판이고, 걸이 짐승 이름이 아니라면, 당연히 왕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걸 강력하게 입증해주는 것이 고구려입니다. 주몽은 5부족 중에서 '계루부' 출신입니다. '계루'와 '걸' 어쩐지 같은 말이라는 느낌이 안 드나요? 저의 주장이 떫은 분은 왼고개를 칠 것입니다만, 그래도 '그거, 그럴듯한데?'라고 생각하는 분이 더 많을 겁니다. 우리가 배운 국사의 내용이 하도 부실하니, 그런 생각이 드시는 겁니다. 부실한 한국 상고사에다가 제가 한 숟갈 떠넣어 드리는 것이니 맛이 달콤할 밖에요. 하하하.
'우거'의 '거'는 왕을 뜻하는 말입니다. 고구려 부족들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을 '구루'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계루'도 왕의 도시, 즉 중심과 수도를 뜻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사람은 가장 중요한 뇌를 '골'이라고 부릅니다. '걸'이나 '골'이나 같습니다. 우거는 고대의 왕을 뜻하는 말이고, 무제의 흉노정벌이 일으킨 여파가 동쪽으로 밀려간 결과, 흉노족의 우현왕이 고조선 사회에 자리 잡으면서 신분세탁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