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명 시인
▲ 정진명 시인

 여기까지는 제 개똥철학에 가까운 얘기였습니다. 그러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풍(豊)' 땅 출신입니다. 그곳 출신 장군 중에 노관(盧?)이란 사람이 있는데, 중국 동북부 지역인 연(燕)나라의 왕으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되자 흉노에게 달아나 숨어버립니다. 바로 이때 그의 수하였던 위만(衛滿)이 노관을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유민을 모아서 중국에 저항하다가 기자조선에 붙습니다. 기자조선의 준왕에게 중국과 조선 사이 완충지대(DMZ)에 머물면서 중국의 공격에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입니다. 그것을 준왕이 받아들였는데, 위만은 계속 유민을 끌어모아 세를 불리고 곧 왕검성으로 쳐들어가 준왕을 몰아냅니다. 이때가 기원전 194년입니다. 준왕은 남쪽으로 내려가 다시 나라를 세우니, 그게 바로 '삼한'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보는 우거는 위만의 손자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죠. 앞서 보았듯이 성도 없고 이름도 또렷하지 않죠. 아예 이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위만조선은 우거를 마지막 임금으로 한 무제에게 공격당해 패망하는데, 이때가 108년입니다. 왜 이 골치 아픈 숫자를 나열하느냐면, 한 무제의 흉노정벌 때문입니다. 한 무제가 곽거병, 위청, 이광 같은 명장들을 동원하여 흉노의 본거지를 쳐서 소탕한 것이 기원전 129년의 일입니다. 
 
 194년에 위만조선 시작
 129년에 흉노 소탕
 108년에 위만조선 망함
 
 이 사건들은 마치 고리처럼 연결되었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한 무제의 공격을 받고 흩어진 흉노족은 서쪽으로 가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했는데, 그 중에 일부는 동쪽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흉노를 공격한 한 무제의 눈에는 흉노와 위만이 똑같은 놈으로 보인 것입니다. 둘 다 터키어를 쓰는 족속들이고, 북쪽의 오랑캐(北狄)가 궁지에 몰리자 동쪽의 피붙이(東夷)에게 들러붙은 꼴입니다. 저걸 그냥 두면 곧 초원으로 되돌아와서 중국 변방을 노략질하는 일을 되풀이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흉노정벌로 국고가 다하고 국력이 바닥났는데도 조선 정벌을 단행한 것입니다. 이런 무리수를 둔 결과 한나라는 무제 이후 혼란에 빠집니다. 결국, 왕조가 망하고 왕망의 '신(新)'나라로 이름까지 바꾸죠. 
 
 위만조선으로서는 서북쪽 초원지대에서 몰려오는 피붙이 겨레들이 반가웠을 것입니다. 준왕을 몰아냈지만, 준왕을 따르던 세력이 주변에 가득한 상황에서 틈만 보이면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정국이었기에 자신들의 세가 불어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죠. 게다가 밀려든 동족들은 한나라와 싸움에 이골이 난 능력자들입니다. '우거'는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들 세력을 대표하는 왕을 뜻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위만'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조선 세력과 새로 밀려든 한나라 유민과 흉노 잔당이 중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뽑은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위만에게 쫓겨가서 만든 나라 삼한 말입니다. 저라면 '기자조선'이라고 했을 텐데, 나라 이름을 '삼한'이라고 했습니다. 위의 내용을 읽어보면 한반도 남쪽의 '한' 사회에 어찌하여 합쳐지지 않은 세 '한'이 존재하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흉노족의 통치방식이 고조선을 거쳐서 그대로 남쪽까지 밀려 내려온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만큼이나 거대한 물결이 이 시기의 동북아시아를 덮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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