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동생 전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동안 건강하게 살아오신 엄마여서 그 놀라움은 더 컸다. 병원에 도착하여 환자복 입은 엄마의 작아진 모습에 울컥하고 말았다. 자식 걱정할까봐 숨쉬기가 곤란했는데, 지금은 심장 등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하는 엄마 말에 맘이 놓였다.
기력이 쇠하셔서 인지 살도 많이 빠져 보이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일평생 농사일로 사신 엄마는 입원을 하시고도 할 일이 많은데 이러고 있다며 걱정만 하신다. 참깨를 털어야 하는데 비가 일주일 내내 온다며 몸 달아 하셨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라 동생과 함께 부지런히 참깨를 털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비오기전에 일을 마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여 마무리 하고 나니 숙제를 다 한 어린아이처럼 후련했다. 며칠 후 엄마는 안정을 찾아 퇴원 하셨다.
집에 돌아와서도 비 맞지 않고 참깨를 털어서 걱정이 없다며 고생했다고 전화를 하셨다. 엄마는 아무리 농사일이 힘들어도 지척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일하러 오라고 연락을 안 하신다. 주변에 보면 일이 있을 때 부르는 엄마들도 있지만 울 엄마는 오직 당신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그렇게 사셨다. 구순을 바라보는데도 불구하고 필자의 가슴속에는 젊은 엄마 모습만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퇴원 후 간호사인 동생이 엄마의 상태도 확인해보고 돌봐드리고 싶다며 모시고 가서 일주일 후에 오셨다. 동생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엄마가 너무 살이 빠져서 이번에 회복할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힘들 것 같다며, 가까이 있는 언니가 엄마를 돌봐줬으며 좋겠다고 했다. 동생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멍해졌다. 잃어버린 뒤에야 더욱 소중함을 깨닫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 부모님의 소중함이 제일 클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어머니를 두고 '살아서는 서푼이요 죽어서는 만 냥'이라는 말이 눈물겨웠다고 말한 한희철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서푼에 지나지 않을 만큼 초라해 보였던 어머니의 모습은 사랑 때문이고, 불편함을 불편하지 않게 생각하셨던 것은 자식 사랑 때문이었다고도 했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가 서푼이 아닌 만 냥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이미 부모님은 우리 곁에 없을 지도 모른다. 세상의 자식들은 이렇게 어리석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를 좋아한다.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시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엄마에게 잘하자 다짐을 하곤 한다. 직장 다닐 때 경로 행사 등에서 이시를 낭송하면 많은 이들이 숙연해 했다.
오늘도 엄마 생각에 이 시를 읊조려본다.'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중략)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엄마는 서푼이 아닌 만 냥의 소중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