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 국가로 가고 있는 한국 정부도 국제결혼 교포에 관심 가져야"
한국도 이미 이민국가인 미국 처럼 빠른 속도로 다문화 국가의 반열에 접근해가고 있는 중이다. 외국 출신 이민자노동사가 250만명에 달하며 일시 체류자나 불법체류자까지 합하면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는 '18회 국제결혼한국여성협회세계대회(World Federation of Korean Inter-Married Womens Association.약칭 '월드킴와') 서울총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이번 서울총회에는 전 세계 각국에서 온 회원과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정범구 전 주독대사 등 전·현직 정부 고위관료와 정치권 인사들을 포함해 내외빈 300여 명이 참석했다.
월드킴와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인과 국제결혼한 여성들이 모인 단체다. 이 단체의 설립 주역이며 현재는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리아 임스트롱 장학재단 이사장 리아 암스트롱(80·한국명 김예자)을 24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나 이 단체의 역할과 활동 상황 들을 들어봤다.
김예자 상임고문 본인은 1964 영어 교사인 미국인 암스트롱씨를 만나 결혼해 도미(渡美), 미국인으로서 58년을 살아온 국제결혼 당사자이기도 하다.
1976년부터 재미대한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해온 그는 "국제결혼한 한인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 돕고 교류하며 사회적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고국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지난 2006년 미국 각지에서 온 국제결혼 한인 여성들과 함께 월드킴와(World-KIMWA)를 창립했어요"라고 밝혔다. 초대·2대 이사장을 연임하며 4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월드킴와는 현재 세계 16개국에 34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그는 "정부 통계에는 재외동포가 732만명이라고 합니다만, 여기엔 국제결혼한 한국 출신 여성 50만명과 그 가족은 포함돼 있지 않은 숫자예요. 말 그대로 다문화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생활하느라 교포사회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며 "남편과 아이들을 포함시키면, 추가해야 할 이들의 실제 숫자가 200만 명은 넘을 겁니다"라고 추산했다.
"모계를 중심으로 친한파가 많아지잖아요. 보통 한 가정에 자녀가 2명이라면 남편까지 포함해 전세계에 200만명의 친한파가 더 늘어나는 거죠. 우리가 세계적으로 그 힘을 합치면 대한민국 발전에도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한국의 국력을 확대할 홍보대사이자 한국문화 알리미, 한국 상품 소비자 등 든든한 원군을 확보하기에 이보다 좋은 대상을 없을 거라고 봅니다. 더구나 지금 한국은 다문화 사회가 가속화 되고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국제결혼하는 한인 여성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죠."
김 고문은 "국제결혼을 해 다문화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한인여성들이 모인 월드킴와 같은 단체가 진정한 민간외교가이며, 한국 문화를 전세계에 전파하는 첨병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고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국익 확대와 한국의 영향력 확장 차원에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요"라며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강조했다. 총회를 2년마다 고국에서 여는 것도 정부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구가 고향인 김 고문은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중 미국인 영어교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엔 NASA산하 천문연구소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하와이에 살았으나, 미국 본토 서북부 캐나다와 국경을 맞댄 워싱턴 주 터코마시로 옮겨 이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닦았다.
자녀는 1남1녀, 맏아들은 미국 유명 대학교수를 지냈고, 며느리는 유엔(UN)에서 서열 3위에 꼽힌다는 윤리국장을 맡고 있다. 전세계 회원국의 부패 관련 정보를 취합하고 처리하는 역할이다.
김 고문은 요즘 한국에서도 크게 성장하고 있는 간병인·요양사 전문 업체 '암스트롱 인홈케어'를 설립했다.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 간병·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사업이 급성장해 빠른 시일 내에 워싱턴 주 최대의 규모 회사로 키웠다고 한다. 2006년 동부 지역의 기업에 매각할 당시 직원이 30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으로 '암스트롱 투자사'를 설립해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한편으로는 사회환원을 위해 '리아 임스트롱 장학재단(LASCO)'을 만들어 싱글맘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260여명의 싱글맘 대학생들을 1인당 2000달러씩 지원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한국도 그렇듯이, 미국에서도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까지 다니는게 어렵기는 마찬가집니다. 미국에선 어려운 집안 학생들은 정부에서 여러가지 지원을 해주고 학비도 면제시켜주지만, 개인 생활비는 늘 부족하죠. 같은 학생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도 커피값 밥값이 필요한데 이러한 돈을 마련하기 쉽지않아요. 아이들 장난감, 간식비도 모자랄텐데 친구들과 커피 한 잔 할 여유가 없는 거예요."
김 고문은 "공부하고자 하는 싱글맘들이 소소한 생활비가 부족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애로를 겪는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이런 부분을 지원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장학사업에 나섰어요"라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인종, 출신 국적, 이념 등을 따지지 않고 매년 15명 내외를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월드킴와를 설립하게 된 것도 김 회장은 자신의 국제결혼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결혼해서 전세계에 펴져 살고 있는 50만명 쯤으로 추산되는 한국 국적 출신 여성들이 힘을 합쳐 한국 음식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봉사하고 한국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취지로 2006년 미국 내 여러 동료 여성들과 함께 설립했다고 한다.
또 한국 사람은 어디로 가도 한국인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고 살면서 다음 세대에도 한국인의 피를 이어주게 될 것이고, 자녀들에게는 대한민국 출신인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자는 것도 이 모임을 추진한 사람들의 바램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민간외교 차원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한국인이 나가 살고 있는 나라마다 대부분 한인회 조직이 있지만, 오래 되다보니 서로 출신지역, 이념 성향 별로 나뉘어 갈등과 분열, 대결 양상을 빚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로 등장한 월드킴와가 새로운 영역에서 여성들의 사회활동 확장, 고국인 한국의 발전에 나름대로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얻고 있다.
김 회장은 "우리는 경험으로 쌓은 노하우가 있으니까 이 모임을 확장해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 여성들도 도와주고 '언니'나 '이모' 처럼 사랑으로 돕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크면서 어릴 때는 몰랐지만 크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많아요. 우리 국제결혼한 엄마들이 잘 함으로써 이런 갈등을 빨리 극복하고 그가 속한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김 회장은 "우리 한국 국적을 가진 해외동포 가정도 3세대가 지나면 60% 이상이 비(非)한인 배우자와 결혼하게 됩니다"라며 머지 않아 동포사회의 정체성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사회에선 '국제결혼'이 아니라 '다민족 결혼'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문화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핏줄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것'은 국제결혼과는 결이 다르다. '다민족 결혼'이라는 용어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다민족 이민 국가이며, 한국도 이미 다민족 국가를 향해 가고 있어요"며 "정부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인식을 깊이 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정부의 관심을 재차 촉구했다.
/서울=이득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