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11월 4일까지 4주간 노년층 지역주민들과 함께한 서원대 노마드융합 프로그램 중 체육-음악 프로그램 날이었다. 좁은 강의실에서는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이 어려워 그날만 넓게 트인 체육관 무용실로 장소를 옮겼다. 그날은 내가 수업을 하는 날이 아니어서 수업에 끝까지 참여할 생각까지는 안 했다. 다만 새로 옮긴 장소를 외부 참가자들이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안내까지만 해드려야겠다 싶어 다른 교수님 한 분과 안내 학생들과 함께 한 분씩, 두 분씩 정문으로 올라오는 참가자들을 체육관까지 함께 걸으며 안내해드렸다. 

수업 시작 시간도 다 되고 참가자들도 이제 다 도착했다 싶을 즈음 '그래도 잠시 들어가 볼까' 하고 무용실로 향했다. 도구를 활용해 몸동작 박자 게임을 하기도 하고 음악에 따라 기본 스텝을 배우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멀찍이서 프로그램을 지켜보다 좋은 포즈 사진 몇 컷을 찍어 놓아볼까 싶어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차차차 스텝을 하나씩 하더니 '울릉도 트위스트'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니까 어느새 나도 뒤편에서 스텝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두 면이 전면 거울로 된 넓은 무용실 한가운데 한 조씩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타임에는 뒤에서 혼자 따라하던 나도 그룹에 섞여 춤을 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뒤에서 남들 추는 춤을 쳐다만 보았는데 수업이 다 끝나갈 무렵에는 어느새 온몸에 춤바람이 들어, 끝나고 무심천 따라 집으로 가는 길에 그리고 집에 가서도 귀에 울리는 가락을 흥얼거리며 요리조리 발을 꼬아가며 차차차 스텝을 밟아댄다. 춤 기운이 온통 나를 채우고 생동한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었던 오래 전 춤을 몸이 기억해냈다. 20년 전 故김영운 목사님이 이끄시던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에 참가했을 때였다. 2박 3일 묵언 수련 동안 춤 명상이 있었다. 첫날 춤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춤을 춰보라고 하였다. 내 팔과 내 다리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팔 하나 들어 올리는 것도, 한 발짝 걸음을 옮기는 것도 어색했다. 그러다가 춤 시간이 끝났다. 둘째 날 춤 명상 시간이 되었다. 이제 팔과 몸통은 제법 움직여지는데, 발은 여전히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나무의 춤이 되었다. 셋째 날에는 홀로 산책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춤 생각은 잊고 있었다. 그저 성 라사로 마을 그늘에 깃들어 쉬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나무가, 집이 보였다. 눈을 감으니 물소리가 보였다. 또 눈을 감으니 나뭇결 흔드는 바람 소리가 보였다. 눈뜰 때와 감을 때 다른 것이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머물다 '이제 내려가 볼까?' 하고 경사진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털레털레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팔은 흔들흔들, 어깨는 들썩들썩, 각자 제멋대로 움직였다. 좀 더 털레털레, 좀 더 흔들흔들, 좀 더 들썩들썩 해본다. '어, 되네?' 성 라사로 마을 문을 나설 때는 몸에 관성이 붙어 완전 너털 춤이 되었다. 팔다리를 내려놓으니 몸이 가까워졌다. 두 눈을 감으니 소리가 보였다. 나를 비우니 춤으로 채워졌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