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간편문답)장인 용산 대통령 청사 로비에서 벌어진 MBC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과의 충돌은 언론과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얘기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언론의 자유, 대통령에 대한 예의, 보도의 편향성과 국익안보 손상, 언론의 책임 등 다양한 의제들이 아직도 토론의 주제로 사용되고 있다.
현장에서 사건의 전말을 지켜본 기자의 입장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됐고, 누구의 잘못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사물 사건을 자기 시각에서 보기 마련이기에 아무리 객관적으로 봤다해도 기자의 가치관, 이념성향에 따라, 나이와 세대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고 판단기준이 다르다.
기자가 아무리 공정한 묘사라고 우겨도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이념 성향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기자들의 일반적 습성이 작동된 때문인지 대통령실 기자실 내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서로 언급을 피한다.
사실 다른 정치적 판단이 내재된 사안들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도 무척 조심스럽고 가능한 언급을 피하는 것이 일상화 됐다. 스스로 자기검열을 통해 언론을 통제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전체 국민들이 아마도 이런 고민을 다들 겪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민주국가라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실제 언론 자유는 이러한 수준이다. 외부적 압제는 사라졌으나, 자아비판적·자기검열과 억제는 보기보다 심하다. 종사자들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외치고 싶어도 못하는 심정이 이럴 것이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형을 형으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경이 이와 같을 것이다.
그날 일의 전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재차 거론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후속조치다. 대통령실은 이미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 주초 곧바로 도어스테핑 장에 가벽을 설치해 차단했고, 도어스테핑 진행을 총괄하는 대외협력비서관(옛 춘추관장)의 사의 표명을 즉각 수용했다. 일종의 읍참마속, 고육지계로 단호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아울러 공식적으로 출입기자단 운영위원회(각 매체종류별 간사단 모임)에 징계에 대한 의견을 내달라고 통지했다.
그러나 기자단은 아무 의견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징계 여부와 내용은 대통령실과 MBC가 알아서 할 일이니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통령실의 요구를 거부한 셈이다.
대통령실의 징계는 출입기자단 내규와 대통령실의 기자실 운영규칙 등을 근거로 MBC의 대통령실 담당기자 출입금지, 해당사에 출입기자 교체 요구, 일정기간 출입금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MBC와는 이미 지난 9월 윤 대통령의 UN총회 참석 순방 당시 비속어 녹취 방송 건으로 법정공방이 예정돼 있어 그 결과가 나오면 그 때까지 종합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수년이 지나야 할 것이다.
아무튼 대통령실은 대형 공중파 방송사를 상대로 어떤 징계를 한다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MBC는 대통령실의 징계가 불러올 파장을 우려해 징계를 해도 법적으로 반격할 것이고 헌법소원까지 갈 전망이다. 또 언론노조,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은 대통령실을 비판하고 나설 것이 자명하다. 적을 만드는 일에 끝까지 단호함을 지속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어려운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미 차관급인 비서관이 책임지고 사표를 낸 상태에서, 유야무야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도 면이 서지 않는다.
이제 대통령실의 시간이다. 결단력과 강자와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윤 대통령이 내릴 결정이 주목된다.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