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은 입이 있어도 무겁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남몰래 민첩하게 한다. 남의 귀를 솔깃하게 하려고 말하는 경우가 없고 해야 할 말만 어렵사리 한다. 어눌해서 얼핏 보기엔 어리석어 보일만큼 말로써 재간을 피울 줄 모르는 어진 마음은 남을 돕고 아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해치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는다. 법 없이 살 사람, 부처 같은 사람, 이러한 사람들은 어디가나 나서지 않는다. 말만 앞세우고 해야 할 일을 밀쳐두는 무리들은 어진 사람을 시기하고 시샘한다. 그러나 어진 마음은 그런 일 따위로 신경을 쓰거나 대응할 꾀를 부리지 않는다. 어진 마음은 사랑함과 올바름을 가장 소중히 한다. 그래서 어진 사람을 인자(仁者)라고 한다. 인자(仁者)는 된 사람을 알아보고 든 사람을 귀중히 여긴다. 왜냐하면 인자에 가까운 삶의 길을 걸을 줄 아는 사람이 된 사람이거나 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소란스러울 때는 난 사람이 판을 친다. 말만 거창하게 하여 순진한 백성의 마음을 붕 뜨게 해놓고 뒷감당을 하지 않는 난 사람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난봉꾼에 불과하다. 선동을 일삼고 궤변을 앞세워 백성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는 치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조용할 수가 없다. 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분명 모자라거나 자신을 돌이켜 볼 줄 모르는 허풍쟁이에 불과하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말을 무서워하는 일부터 실천하면 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든 사람일 수가 없고 된 사람일 수가 없다. 겉으로 정직하고 봉사하는 인간인 척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더럽고 누추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관리들의 위선, 지도자들의 연극, 등등은 백성들의 매서운 눈길을 피할 수가 없다. 사람의 병든 속을 도려내 새살이 돋게 해야 한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 한편 부끄럽고 한편 시원해진다. 왜냐하면 어둡던 마음속이 맑아지고 개운해지는 모습을 스스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사람은 철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난 사람이 철부지라면 든 사람이나 된 사람은 철이 든 사람이다. 겉만 호사스런 사람보다 속이 찬 사람은 허튼 짓이나 못할 짓을 범하지 않는다. 남을 이용하지 않고 남을 돕는 마음은 항상 여유를 지니면서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나만 살고 상대는 죽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는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절대 혼자서는 못사는 법이다. 같이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언제나 나와 너이지 나만이 아니다. 나와 너의 연결 고리는 언제나 인(仁)이고 신(信)이고 의(義)이다. 이것이 삶의 보약이다. 살고자 하면 우리는 이 보약을 먹어야 한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